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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생 때 월 10만 원씩 모아서 120만 원짜리 피규어를 샀습니다. 수입이라고는 용돈뿐이던 시절에, 제 인생에서 가장 비싼 피규어 중 하나를 들인 셈인데요. 바로 PT스튜디오 샹크스 해적단 SD 세트입니다. 그중에서도 하울링 갭은 지금 봐도 웃음이 나는 얼굴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세트 안에서 주인공보다 먼저 눈이 가는 캐릭터입니다. 오늘은 취준생이 120만 원짜리 세트를 고른 이유와 할부로 사게 된 과정, 그리고 직접 진열해 보고 나서야 알게 된 배치 이야기까지 풀어보겠습니다.
샹크스 SD 세트, 120만원짜리를 고른 이유
PT스튜디오 샹크스 해적단 SD 세트는 120만 원이었습니다. 취준생에게 120만 원은 정말 큰돈입니다. 그런데도 이 세트를 고른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옆에 비교 대상이 있었거든요. 같은 회사에서 나온 검은수염 해적단 SD 세트는 발매가가 150만 원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250~300만 원까지 올랐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라인이 검은수염 해적단이다 보니, 이 가격이 오르는 걸 지켜보면서 PT스튜디오 SD 세트는 사 두면 가치가 지켜지는 제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샹크스 해적단 세트는 오히려 80만 원으로 떨어졌습니다. 같은 회사, 같은 SD 라인인데 한쪽은 두 배 가까이 오르고 한쪽은 3분의 1이 빠진 겁니다. 예전에 피테크 이야기를 하면서 오르는 건 일부뿐이라고 했는데, 그 말을 제 지갑으로 직접 확인한 셈이죠. 그래도 이 세트를 산 걸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가격이 아니라 캐릭터 때문에 고른 세트였으니까요. 샹크스 해적단은 원작에서도 사황의 품격이 느껴지는 해적단이라, 검은수염 해적단과 함께 두면 원작의 무게감이 완성될 것 같았습니다.
특히 하울링 갭은 처음 봤을 때부터 인상이 깊었습니다. 이빨이 명수처럼 생겨서, 보는 순간 웃음이 터졌습니다. 샹크스 해적단 간부들은 다들 카리스마 있게 서 있는데, 갭만 혼자 익살스러운 이빨을 드러내고 있으니 세트 전체에 숨통을 틔워 주는 느낌이었습니다. 120만 원짜리 세트에서 가장 먼저 눈이 가는 게 주인공 샹크스가 아니라 갭이라는 게 지금 생각해도 재미있습니다. 그래서 제목에도 샹크스가 아니라 하울링 갭의 이름을 넣었습니다.

취준생이 120만원 피규어 사는 법
문제는 돈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취준생이라 정해진 수입이 없었고, 매달 용돈에서 10만 원씩 떼어 피규어 자금으로 모으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모아서는 120만 원을 한 번에 내기까지 1년이 걸립니다. 그사이에 예약이 끝나 버리면 그대로 놓치는 거죠.
그래서 처음엔 친구한테 돈을 빌려 볼까 생각했습니다.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는데, 거절당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일입니다. 취준생 친구가 피규어 사겠다고 큰돈을 빌려 달라는데, 선뜻 빌려줄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그때는 서운하기보다 부끄러운 마음이 더 컸습니다. 피규어 하나 때문에 친구 사이가 어색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그 뒤로는 다시 부탁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방법을 찾은 건 피규어 커뮤니티였습니다. 자주 활동하던 커뮤니티 대표님께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할부로 구매할 수 있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120만 원을 10~12개월 동안 나눠서 갚는 조건이었습니다. 매달 모으던 10만 원이 그대로 할부금이 된 셈입니다. 다행히 이 세트는 예약 후 제작 기간이 10~12개월이라, 제품이 나오기 전까지 갚아 나갈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도 빠짐없이 갚았고, 발매 직전에 납부를 완료했습니다. 마지막 할부금을 보내던 날은 피규어를 받은 날만큼이나 뿌듯했습니다.
그리고 상자가 도착했을 때는 정말 너무 행복했습니다. 1년 가까이 매달 조금씩 갚아 온 시간이 한 번에 손에 들어온 느낌이었거든요. 돈을 빌리지 못해 막막했던 순간부터 박스를 여는 순간까지, 이 세트에는 취준생 시절의 제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피규어 진열, 직접 해봐야 아는 것
행복하게 받은 세트를 이제 어떻게 진열할지가 남았습니다. 처음 계획은 검은수염 해적단과의 대결 구도였습니다. 샹크스와 검은수염은 원작에서도 맞서는 사이고, 마침 같은 PT스튜디오 SD로 두 해적단을 모두 갖고 있었으니까요. 두 해적단을 마주 보게 세우면 원작의 대결 장면처럼 보일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대결 구도로 배치해 보니 문제가 생겼습니다. 서로 마주 보게 하려면 캐릭터들이 옆이나 안쪽을 봐야 하는데, 그렇게 하니 뒤쪽 캐릭터가 안 보였습니다. 앞줄 캐릭터의 등과 옆모습에 가려서, 뒷줄 간부들은 얼굴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120만 원짜리 세트의 절반을 장식장 안에 숨겨 둔 꼴이었죠.
그래서 방법을 바꿨습니다. 전부 나를 향하도록 나열식으로 배치했습니다. 모든 캐릭터가 정면을 보게 줄을 세우니, 뒷줄까지 얼굴이 하나하나 다 보였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대결 구도보다 나열식이 더 멋있었습니다. 특히 SD 피규어는 큰 얼굴이 매력이라, 얼굴이 다 보여야 제맛이더라구요.
사실 저도 처음엔 대결 구도로 해야 멋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마블 피규어를 대결 구도로 세웠을 때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이번에도 당연히 그럴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대결 구도를 하면 못 보는 캐릭터가 많아서 아쉬웠습니다. 대결 구도를 해야 한다는 건 오해였습니다. 피규어 크기와 개수, 장식장 깊이에 따라 맞는 배치가 다르고, 그건 직접 진열해 봐야 압니다. 지금도 샹크스 해적단은 나를 향해 나란히 서 있습니다. 해 보고 나서야 찾은 자리라, 앞으로도 이 배치는 바꾸지 않을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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