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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달러 환율이 이틀 연속 1,542.7원으로 마감했습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의 최고치입니다. 장중에는 1,549원까지 치솟아 1,550원 턱밑까지 압박을 받았습니다. 경상수지 흑자가 넘쳐나는데 환율이 금융위기 수준이라는 이 모순, 저는 목공소에서 그라인더를 손에 쥔 채 그 뉴스를 읽고 멍하니 멈춰 서고 말았습니다.
경상수지 1,027억 달러 흑자인데 왜 환율이 폭등하나
올해 1~4월 경상수지(經常收支) 흑자가 약 1,027억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경상수지란 한 나라가 수출입 거래와 서비스 교환을 통해 벌어들인 외화의 순수익을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쉽게 말해 나라 전체가 해외에서 얼마나 돈을 벌었는지 보여주는 성적표입니다. 반도체 수출이 사상 최고 행진을 이어가고, 미국과 이란의 종전 합의로 호르무즈 해협 개방 기대가 커지면서 국제유가가 배럴당 60달러대 후반으로 내려앉았습니다. 유가가 떨어지면 원유 수입에 쓸 달러 수요도 줄어들어 원화에는 분명히 긍정적인 재료입니다.
그런데도 환율은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의 깜짝 실적 발표에 코스피가 5% 넘게 뛰어 8,930선을 회복하는 상황에서도 달러는 강세를 유지했습니다. 저는 솔직히 이 조합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교과서대로라면 막대한 흑자에 유가 하락, 증시 급반등이 겹쳤을 때 환율은 자연스럽게 안정을 찾아야 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 현실을 숫자로 직접 확인하고 나서야, 제가 오랫동안 갖고 있던 외환시장에 대한 고정관념이 완전히 틀렸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환율에 지금 동시에 작용하고 있는 상승 압력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기준금리 인상 시사에 따른 전 세계적 달러 강세
- 외국인 투자자의 5거래일 누적 12조 2,000억 원 규모 순매도(셀코리아)
- 서학개미와 기관의 해외 자산 매수를 위한 구조적 달러 매수 대기 수요
- 엔화 약세와의 동조화 현상
이 네 가지가 동시에 맞물려 돌아가는 구조에서, 경상수지 흑자라는 숫자 하나만 믿고 환율 안정을 기대했던 건 제 판단 착오였습니다.
디램달러의 함정, 장부 흑자가 실제 유동성이 아닌 이유
이번 환율 급등에서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온 개념은 '디램달러(DRAM dollars)'였습니다. 미국 외교협회(CFR)의 브래드 세처 선임연구원이 처음 이름 붙인 이 표현은, 반도체 같은 수출 대기업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달러를 국내 외환시장으로 환전하지 않고 해외 현지에 그대로 쌓아두는 현상을 산유국의 '페트로달러(petrodollar)'에 빗댄 것입니다. 페트로달러란 원유 수출 대금으로 벌어들인 달러가 국제 금융시장을 순환하는 구조를 말하는데, 디램달러는 그 반도체 버전인 셈입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기업들은 해외 매출과 현지 생산 비중이 높기 때문에, 번 달러를 해외에서 다시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굳이 서울외환시장에서 원화로 바꿀 이유가 없는 겁니다. 그 결과 경상수지 장부에는 1,027억 달러 흑자가 찍히지만, 실제 국내 외환 유통망에는 달러가 들어오지 않는 기형적인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저는 주말마다 목공소에서 느티나무나 단풍나무 통원목 슬래브를 직접 손으로 나르고 깎으면서 오랜 세월을 버텨온 나무 내부의 밀도와 실제 표면 상태가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를 몸으로 배웠습니다. 외형이 멀쩡해 보이는 원목도 내부 수분이 잘못 분포되어 있으면 대패를 밀어낼 때 전혀 다른 저항감을 줍니다. 이번 환율 상황이 딱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겉에는 흑자라고 적혀 있지만, 실제 시장에 공급되는 달러 유동성은 텅 비어 있는 구조입니다. 그라인더를 멈추고 기사를 읽으면서 "와, 장부 숫자가 전부가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서늘하게 밀려왔습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한국의 대외금융자산 잔액은 2조 4,396억 달러로, 전년 말 대비 3,448억 달러 증가했습니다(출처: 한국은행). 이 막대한 해외 자산을 운용하는 개인과 기관이 환율이 조금이라도 내릴 기미를 보이면 달러 매수에 나서는 구조적 수요가 이미 형성되어 있습니다. 환율 하단을 밑에서 받치는 이 '매수 대기 벽'이 존재하는 한, 일시적 호재만으로 환율이 내려가기는 구조적으로 어렵습니다.
국민연금 리밸런싱 유예, 시장 교란의 증폭기였나
영국계 투자은행 바클레이즈는 국민연금의 리밸런싱(rebalancing) 유예가 외국인 자금 유출을 가속화하는 '증폭기'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여기서 리밸런싱이란 포트폴리오 내 자산 비중이 목표치에서 벗어났을 때 이를 다시 맞추기 위해 자산을 사고파는 작업을 말합니다. 국내 주식 비중이 올라가면 일부를 팔아 해외 자산 비중을 높이는 방식입니다.
바클레이즈 분석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정상적인 리밸런싱을 실행했다면 국내 주식을 130조 원 규모 순매도했을 것이고, 그 물량이 시장에 나왔다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대규모 매도에 나설 명분이 훨씬 줄었을 것이라는 논리입니다. 국민연금이 리밸런싱을 유예한 것이 단기 코스피 수익률 지표를 높이는 효과는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시장 변동성을 키우는 구조를 만들었다는 분석입니다.
보건복지부는 이에 대해 "과도한 가정에 기반한 분석이며 인과관계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저는 이 반박이 완전히 틀렸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130조 원 가정은 확실히 가상의 시나리오입니다. 다만 "동의할 수 없다"는 말만으로는 시장의 의구심을 가라앉히기 어렵고, 실제로 5거래일간 12조 2,000억 원의 외국인 순매도가 발생한 현실 앞에서 기금 운용 전략이 미친 영향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 태도는 아쉽습니다. 이 논란이 해소되지 않는 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셀코리아(sell Korea) 심리를 완전히 되돌리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1,500원 뉴노멀, 내 포트폴리오에 어떤 의미인가
'뉴노멀(new normal)'이라는 표현이 무섭게 느껴지는 건, 그것이 단순한 일시적 급등이 아니라 구조가 바뀌었다는 선언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뉴노멀이란 과거에는 비정상으로 여겨지던 상태가 새로운 표준으로 굳어지는 현상을 뜻합니다. 환율 1,500원이 뉴노멀로 자리 잡는다면, 수입 물가 상승이 내수 소비를 압박하고 가계 실질 구매력이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흐름이 구조화된다는 의미입니다.
다음 달 예정된 SK하이닉스의 미국주식예탁증서(ADR) 나스닥 상장은 환율 하락 요인으로 거론됩니다. ADR(American Depositary Receipt)이란 외국 기업의 주식을 미국 증권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발행하는 증서입니다. ADR 발행으로 조달한 자금이 국내로 유입되면 일정 부분 원화 강세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제 관점에서는 이것이 구조적 문제의 근본 해결은 아니고, 일시적인 유입 효과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출처: 미국 외교협회 CFR).
저는 이날 오후 목공소 작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노트북을 열고 개인 엑셀 시트에 환율 시나리오를 다시 정리했습니다. 1,500원 이상이 6개월 이상 지속될 경우 대출 이자 부담과 수입 소비재 지출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제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환헤지(hedge) 비중을 어느 수준으로 조정해야 할지를 숫자로 따져봤습니다. 환헤지란 환율 변동으로 인한 손익 위험을 선물환이나 옵션 같은 금융상품으로 상쇄하는 전략입니다. 장부 흑자라는 큰 숫자에 안심하던 시각을 이번 기회에 완전히 내려놓고, 실제 유동성 흐름을 기준으로 더 보수적으로 판단하기로 다짐했습니다.
이 문제가 단기에 해소되기를 기대하기보다는, 고환율이 이어지는 국면에서 내 자산과 생활비 구조를 어떻게 재설계할지를 먼저 생각하는 편이 현실적입니다. 거대한 슬래브 원목도 내부 수분과 결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마감 이후에 터집니다. 외환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흑자 수치가 아니라, 실제 달러가 어디서 어떻게 흐르는지를 직접 들여다보는 습관이 지금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바탕으로 작성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환율과 관련한 투자 결정은 반드시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참고: https://www.mydailybyte.com/post/%ED%99%98%EC%9C%A8-26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