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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반도체는 미국 제재에 막혀 영원히 2류에 머물 거라고 생각하셨습니까?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올해 1분기 기준으로 창신메모리(CXMT)가 D램 시장 점유율 8%를 찍으며 단독 4위 자리를 굳혔다는 수치를 주말농장 원두막 그늘 아래서 스마트폰으로 확인한 순간, 잡초를 쥔 손이 그 자리에서 멈췄습니다.
중국 반도체 굴기: 점유율이 말하는 것 — 제가 틀렸습니다
일반적으로 중국산 메모리 반도체는 기술 수준이 낮아 글로벌 공급망에서 의미 있는 점유율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솔직히 저도 오래 그렇게 믿어왔습니다. 미·중 갈등 속에서 주요 고객사인 미국 빅테크들이 중국산을 꺼릴 것이고, 기술 격차가 좁혀지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판단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제 수치는 달랐습니다. 지난해 1분기 CXMT의 D램 시장 점유율은 3%에 불과했지만 올해 1분기에는 8%로 수직 상승했습니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이 차지하는 합산 점유율은 95%에서 89%로 내려왔습니다. 상위 3개사가 내준 6% 중 대부분을 CXMT 단독으로 흡수한 구조입니다(출처: 카운터포인트리서치).
이 배경에는 반도체 공급망 내에서 HBM(고대역폭메모리) 수요 폭증이 있습니다. HBM이란 D램 칩을 수직으로 여러 층 쌓아 데이터 처리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인 차세대 메모리로, AI 가속기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고부가가치 제품입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HBM 생산에 라인 대부분을 집중하는 사이, HBM과 동시에 수요가 폭발한 범용 D램과 낸드플래시 공급이 상대적으로 부족해지는 공백이 생겼습니다.
CXMT와 YMTC(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는 그 빈자리를 파고들었습니다. 저가 범용 메모리를 대량으로 쏟아내며 점유율을 빠르게 끌어올린 방식은, 제가 오전에 밭을 갈면서 떠올렸던 비유와 딱 맞아떨어졌습니다. 선두 농부가 특수 작물 재배에 온 정신을 쏟는 동안, 뒤에서 조용히 기초 범용 작물을 대량으로 심어놓은 농부가 어느새 주요 밭고랑을 장악한 꼴입니다.
범용메모리 잠식의 속도 — 전기차 판박이입니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 정책은 2014년에 시작됐습니다. 10년 동안 중국 정부가 조성한 반도체 투자 기금 규모는 1조 3,311억 위안, 우리 돈으로 약 300조 원에 달합니다. 여기에 올해 5월에만 77조 원 규모의 신규 자본금이 추가로 투입됐습니다(출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제 경험상 이런 규모의 정부 주도 투자는 시장 경제 논리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 손익분기점을 맞추기 위한 투자가 아니라 국가 자급자족이라는 목표를 위해 적자를 감수하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YMTC가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올해 1분기 13%의 점유율로 마이크론, 샌디스크와 함께 4위권을 형성하며 일본 키옥시아(14%)를 턱밑까지 추격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낸드플래시(NAND Flash)란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유지되는 비휘발성 메모리로, 스마트폰 저장공간이나 SSD에 쓰이는 가장 범용적인 반도체 중 하나입니다. 이 시장에서까지 중국 기업이 글로벌 3~4위권을 다투게 될 줄은 제가 솔직히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중국이 범용 메모리 시장에서 점유율을 빠르게 끌어올리는 방식은 전기차 시장에서 BYD가 걸었던 길과 구조적으로 닮아 있습니다. 정부 보조금을 등에 업고 저가 보급형을 대량으로 공급하며 시장 볼륨 자체를 키우고, 어느 순간 품질까지 따라잡아 글로벌 시장을 흔드는 공식입니다. 현재 중국의 범용 메모리 전략이 정확히 그 흐름 위에 있다는 것을 이번 수치들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CXMT가 이번 3분기 과창판 상장을 통해 확보하는 공모 자금 약 6조 7,000억 원의 사용처를 보면 전략의 다음 단계가 명확합니다.
- D램 기술 고도화: 약 2조 9,000억 원 투입
- HBM 등 차세대 메모리 기술 개발: 약 2조 원 투입
- 상하이 등 신규 생산 시설 확충: 나머지 자금 활용
범용 시장 장악 이후 고부가가치 시장까지 치고 올라오겠다는 설계가 숫자로 드러나 있습니다.
기술격차라는 믿음, 얼마나 유효한가
그렇다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기술 우위는 여전히 유효한 방어선이 될 수 있을까요? 저는 이 질문 앞에서 솔직히 확신이 흔들립니다.
낙관론의 근거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현재 CXMT와 YMTC가 생산하는 제품은 선두권 기업들에 비해 공정 기술 세대가 뒤처져 있고, HBM 같은 고성능 메모리 시장에서는 미국 빅테크의 품질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미국 국방부가 최근 CXMT와 YMTC를 '중국 군사 기업' 명단에 포함시키면서 공급망 접근에 추가적인 압박이 가해진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제가 더 냉정하게 보고 싶은 지점은 따로 있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시장 매출 비중이 이미 10%대로 축소됐다는 사실입니다. 2020년까지만 해도 중국은 세계 D램 수요의 43%를 차지하는 최대 고객 시장이었습니다. 중국 시장에서의 점진적인 교체가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고, 그 다음 단계로 저가 중국산이 제3국 시장에 쏟아져 나와 단가 가이드라인 자체를 흔드는 시나리오가 가시권 안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이란 개인이나 기업이 소득 대비 어느 정도의 부채를 감당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인데, 이 개념을 산업에 적용하면 국내 반도체 부품 협력사들이 현재의 초호황 사이클이 끝난 뒤 감당해야 할 재무 구조 부담이 상당하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주말농장 겉흙이 아무리 풍성해 보여도 뿌리가 닿는 지하수맥이 말라가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정리하면 지금 한국 메모리 산업 앞에 놓인 변수는 다음과 같습니다.
- HBM 중심 기술 격차는 당분간 유효하지만, 중국의 추격 자금이 차세대 기술로 향하고 있다
- 범용 D램·낸드 시장에서는 이미 점유율 침식이 시작됐다
- 중국 내 한국산 수요가 축소되는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다
이 세 가지 흐름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가볍게 보기 어렵습니다.
이번 아침 주말농장에서 잡초를 뽑다가 마주한 기사 하나가 저로 하여금 반도체 관련 포트폴리오 전략을 한 단계 더 보수적으로 재점검하게 만들었습니다. K-반도체 불패라는 낙관론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 믿음이 눈앞의 구조적 변화를 가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중국 기업들의 상장과 공격적 투자가 본격화되는 앞으로 2~3년이 진짜 변곡점이 될 것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은 반드시 본인의 기준과 전문가 상담을 바탕으로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