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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조 원짜리 자산을 쥔 대형 사모펀드와 금융그룹이 고작 2,000억 원의 보증 조건을 끝내 합의하지 못해 1만 2,000명의 직원이 실직 위기에 내몰렸습니다. 저도 처음엔 이게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라고 믿기 어려웠습니다. 서울회생법원이 홈플러스의 기업회생절차 폐지를 결정한 지금, 과연 이 파국의 책임은 어디에 있는지, 다양한 시각을 함께 살펴봤습니다.
홈플러스 파산: 회생절차 폐지, 누구의 책임인가
어떤 분들은 홈플러스의 몰락을 온라인 커머스의 급성장이 불러온 '업황 침체'라는 구조적 흐름으로 보기도 합니다. 알리, 테무 같은 초저가 이커머스의 공습 앞에서 대형 오프라인 마트가 흔들리는 건 어쩌면 예정된 수순이었다는 시각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번 사태를 그 논리만으로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주말마다 시골 주말농장에 내려가 직접 밭을 일구는 취미가 생긴 지 몇 년 됐는데, 오늘 오전에도 7월 초의 가마솥 더위 속에서 스프링클러 밸브를 조율하다가 이 뉴스를 접했습니다. 물줄기를 대어줄 메인 펌프들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밸브를 잠가버리면, 뒤늦게 보조 양수기를 들고 와봤자 이미 시들어버린 밭을 살릴 수 없다는 생각이 딱 들더군요.
DIP 금융(Debtor in Possession Financing)이 이번 사태의 핵심 변수였습니다. DIP 금융이란 회생절차가 진행 중인 기업에 대해 법원의 승인 아래 최우선 변제권을 부여해 집행하는 긴급 운영자금 대출을 의미합니다. 메리츠금융그룹은 이 DIP 자금으로 1,000억 원을 지원할 의사를 밝혔지만, MBK파트너스와 김병주 회장의 개인 보증을 전제 조건으로 걸었습니다. MBK 측은 회사 차원의 연대보증을 제공하겠다며 맞섰고, 양측의 공방이 길어지는 사이 관리인은 직원 6월분 급여조차 지급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솔직히 이 대목에서 입이 벌어졌습니다. 수조 원 규모의 자산을 운용하는 두 거대 금융 주체가 1,000억 원짜리 보증 한 줄을 두고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사이, 영세 협력업체 150여 곳이 업체당 평균 7억 7,400만 원이라는 미수금 폭탄을 안게 됐습니다. 사모펀드(Private Equity Fund)의 속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지점입니다. 사모펀드란 소수의 기관투자자나 고액 자산가로부터 자금을 모아 비공개로 운용하면서 투자 수익 극대화를 목표로 하는 펀드로, 인수한 기업의 장기 생존보다 투자금 회수 시점의 마진 극대화에 집중하는 구조적 특성을 지닙니다.
이번 사태에서 피해를 입은 주체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홈플러스 직원 약 1만 2,000명: 6월분 급여 미지급 및 대규모 실직 위기
- 중소 협력업체 150여 곳: 업체당 평균 7억 7,400만 원 미수금 발생
- 후순위 전단채 투자자: 총 4,019억 원 규모 피해, 구제 가능성 불투명
이 숫자들을 엑셀에 하나씩 채워 넣으면서, 제가 오랫동안 믿어왔던 '대형 유통 대장주는 결국 살아남는다'는 공식이 완전히 무너지는 걸 느꼈습니다.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란 법원의 감독 아래 채무를 재조정하고 기업을 정상화하려는 절차인데, 그 절차 자체가 자금 조달 실패 하나로 1년 4개월 만에 파국을 맞은 셈입니다(출처: 서울회생법원).
62개 점포, 이제 어디로 가는가
파산 시나리오로 넘어갈 경우, 홈플러스의 62개 점포는 일반 파산재단의 경매 절차에서 제외됩니다. 이 점포들이 메리츠의 신탁 담보로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신탁 담보란 채무자가 부동산 소유권을 수탁자(신탁회사)에게 이전하고, 채권자가 우선수익자 지위를 갖는 구조로, 채무 불이행 시 채권자가 법원 경매 없이도 독자적으로 자산을 처분할 수 있는 강력한 담보 방식입니다. 메리츠는 이 구조를 통해 선순위 대출 채권 약 1조 3,000억 원을 회수할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이 점포들을 누가 인수하느냐입니다. 이마트나 롯데마트 같은 경쟁 대형마트가 인수에 나설 가능성은 낮다는 시각이 우세합니다. 오프라인 마트 업황이 이미 구조적 침체기에 접어든 상황에서, 점포 하나를 추가로 인수할 유인이 적다는 논리입니다. 저도 이 분석에는 동의하는 쪽입니다.
결국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용도 변경을 통한 부동산 매각입니다. 점포 부지를 주상복합, 물류센터, 오피스 등으로 바꿔 파는 방식인데, 이미 MBK가 앞서 처분한 홈플러스 동대문점 자리에 지상 49층 규모의 복합시설이 들어서고 있는 게 그 선례입니다. 대형마트가 사라진 자리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는 시나리오는, 서민 물가를 지탱하던 유통 인프라의 공백이 결국 부동산 자산으로 흡수되는 씁쓸한 구조를 보여줍니다.
정부는 임금 체불 근로자에게 1인당 최대 2,100만 원의 대지급금을 지원하고, 중소 협력업체에 총 4,400억 원 규모의 긴급 유동성을 투입한다고 밝혔습니다. 이 조치들을 두고 어떤 분들은 "그나마 빠르게 대응했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봅니다. 결국 자본이 만들어낸 파국의 뒷수습을 세금으로 메우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에서, 사후 수습보다 사전 규제의 설계가 근본적으로 더 중요했다고 생각합니다.
후순위 채권자인 전단채(전자단기사채) 투자자들의 피해도 심각합니다. 전단채란 만기 1년 이하의 단기 채권을 전자 방식으로 발행한 것으로, 비교적 고금리를 제공하는 대신 기업이 파산하면 선순위 채권자들보다 나중에 변제받는 구조입니다. 4,019억 원 규모의 피해가 발생했는데, 선순위 채권 회수에 우선권이 쏠린 현 구조에서 이들 투자자에 대한 실질적인 구제 방안은 여전히 불투명합니다(출처: 금융감독원).
즉시항고 마감일인 7월 20일이 아직 남아 있고, 자금을 조달해 항고에 성공할 경우 회생절차가 재개될 가능성도 열려 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지금까지의 흐름을 보면 그 가능성에 크게 기대를 걸기가 어렵습니다.
이번 홈플러스 사태는 사모펀드가 실물 유통 인프라를 인수했을 때 어떤 결과가 발생할 수 있는지를 가장 냉혹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기록될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이번 일을 계기로, 대기업이라는 이름만 믿고 그 생존 가능성을 당연시했던 제 자신의 인식을 다시 점검하게 됐습니다. 독자분들도 협력업체나 투자자 입장에서 특정 기업의 대주주 구조와 부채 비율, 담보 설정 현황을 꼼꼼히 살펴보는 습관을 들이시길 권해드립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법률 조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