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퇴근길에 기름값 기사를 보며 한숨을 쉬던 요즘, 안동에서 한·일 정상회담이 열렸다는 소식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총 105분간 마주 앉아 에너지 협력부터 공급망, 북핵 문제까지 폭넓게 논의했습니다. 뉴스 헤드라인만 보면 성과가 탄탄해 보였지만, 들여다볼수록 의문이 남는 부분도 적지 않았습니다.
중동 사태와 에너지 협력, 숫자로 보면 달라 보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이번 회담의 가장 눈에 띄는 합의가 원유 스왑 확대라는 점에서, 처음에는 "두 나라가 에너지 위기에 발 빠르게 대응했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원유 수입 중동 의존도가 약 70%, 일본은 90% 이상이라는 수치를 보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여기서 LNG 스왑이란, 한쪽 국가가 액화천연가스(LNG) 수급에 차질이 생겼을 때 상대국의 재고를 빌려 쓰고 나중에 되돌려주는 상호융통 방식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에너지판 품앗이입니다. 이번 회담에서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원유와 석유 제품까지 스왑 대상을 넓혔습니다.
아시아 각국이 현재 수개월치 에너지 비축량을 보유하고 있어도 중동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국가 경제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있었습니다(출처: 뉴욕타임스). 제가 직장에서 매일 체감하는 비용 절감 압박과 원자재 가격 급등을 생각하면, 이 협력의 필요성 자체는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에너지·환율·금리까지 전방위로 흔들리는 지금, 이웃 나라와 에너지 안전판을 하나 더 만들어 둔 셈이니까요.
이번 에너지 협력의 핵심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LNG에 국한됐던 스왑 품목을 원유·석유 제품까지 확대
- 지난 3월 한국가스공사와 일본 JERA(일본 최대 LNG 기업)의 LNG 스왑 협약을 토대로 협력 범위 확장
- 중동 에너지 수급 불안 장기화에 대한 공동 대응 의지 확인
공급망 파트너십, 기회인가 리스크인가
일반적으로 한·일 공급망 협력은 양국 모두에게 이익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퇴근 후 동료들과 이 뉴스를 이야기하다 보면, "일본 덕분에 우리가 반사이익을 누린다"는 시각보다 "우리가 괜히 엮이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훨씬 많이 나옵니다.
배경을 보면 이런 불안이 근거 없는 건 아닙니다. 다카이치 총리가 "대만 유사시 개입"을 시사하는 발언을 한 이후, 중국이 일본에 희토류 등 핵심 광물의 수출을 규제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희토류란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방위 산업 등 첨단 제조업 전반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17종의 금속 원소군을 가리킵니다. 희토류가 막히면 배터리도, 반도체도 줄줄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일본의 핵심 광물 공급망을 보완하는 파트너 역할을 자처하는 모습은, 중국 입장에서는 명백한 '진영 선택'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한국의 대중 수출 의존도가 여전히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보복성 규제 가능성을 가볍게 볼 수 없습니다. 지난 3월 체결된 한·일 공급망 파트너십 자체가 나쁜 구상은 아니지만, 그것이 몰고 올 외교적 파장에 대한 대비책이 함께 제시됐어야 한다고 봅니다.
한·일 공급망 협력이 우리 경제에 미칠 수 있는 리스크 요소를 짚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중국의 대한국 핵심 광물·중간재 수출 규제 가능성
- 한국 수출 기업의 대중 무역 보복 노출 위험
- 미·중 갈등 심화 시 '진영 외교' 압박 가중
한국의 대중 수출 비중은 전체 수출의 약 20%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여전히 단일 최대 교역국입니다(출처: 한국무역협회). 이 수치 하나만으로도 공급망 협력의 방향을 어떻게 설계해야 할지 신중하게 따져봐야 할 이유가 충분합니다.
안보 공조, 겉은 화려하고 속은 다릅니다
제가 직접 이번 회담 결과를 쭉 읽어봤는데, 안보 부분에서 가장 솔직하게 "이게 협력인가?" 싶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E·N·D 이니셔티브를 설명했습니다. 여기서 E·N·D 이니셔티브란 북한 체제 존중(Engagement), 흡수통일 불추구(Non-absorption), 적대 행위 금지(De-escalation)를 3원칙으로 하는 평화 한반도 구상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남북 대화와 공존에 방점을 찍은 접근입니다.
반면 다카이치 총리는 한·미·일 3국 공조를 통한 북핵 위협 대응만을 재확인하는 데 그쳤습니다. 북한 미사일이 직접 사정권에 들어오는 일본 입장에서 안보 위협을 강조하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남북 관계 개선을 이야기할 때 일본은 억지력 강화를 이야기하는 이 구도는, 정상이 네 번이나 만난 셔틀 외교의 성과치고는 지나치게 단순합니다.
셔틀 외교란 두 나라 정상이 상대국을 번갈아 방문하며 지속적으로 소통하는 외교 방식을 뜻합니다. 이번에 다카이치 총리가 이 대통령의 고향 안동을 답방하면서 형식적으로는 셔틀 외교가 자리를 잡는 모양새입니다. 하지만 형식의 완성도와 내용의 깊이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안보관의 핵심에서 입장 차만 확인하고 돌아선 회담을 두고, 양국 간 협력이 공고해졌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 에너지 협력이라는 실질적 성과는 분명 있었습니다. 중동발 공급 충격이 현실화되는 상황에서 원유 스왑 확대는 당장의 경제 불안을 완충하는 안전망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급망 협력이 중국 리스크를 키우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면밀한 외교적 균형이 필요해 보입니다. 안보 문제에서 두 나라가 같은 언어를 쓰지 못하는 한, 화려한 셔틀 외교가 반복되더라도 그 실질은 절반짜리에 머무를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번 회담을 계기로, 에너지·공급망 협력의 이면에 어떤 외교적 셈법이 깔려 있는지 조금 더 챙겨보시길 권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외교·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참고: https://www.mydailybyte.com/post/%ED%95%9C%EC%9D%BC-%EC%A0%95%EC%83%81%ED%9A%8C%EB%8B%B4-2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