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얼마 전 부서 회식 자리에서 맥주 한 잔만 채워두고 "짠" 한 번 하고 끝, 2차는 카페로 직행하는 광경을 보면서요. 한국인의 주류 실질 소비지출이 2025년 1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9.0% 줄었고, 주류 출고량은 10년 전보다 17% 넘게 감소했습니다. 단순한 경기 침체가 아니라, 우리가 술을 대하는 방식 자체가 바뀌고 있는 겁니다.
소버 큐리어스가 바꾼 음주 문화, 진짜 원인은 무엇인가
요즘 MZ세대 사이에서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라는 말이 자주 들립니다. 소버 큐리어스란 술을 완전히 끊지는 않되 의도적으로 음주를 줄이고, 음주 습관 자체를 비판적으로 돌아보는 라이프스타일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술이 싫어서"가 아니라 "왜 마셔야 하지?"라는 질문을 던지는 거죠. 제가 직접 주변을 봐도, 20대 후반 동료들이 회식 자리에서 아예 무알코올 음료를 시키는 모습이 이제는 어색하지 않습니다.
이런 변화의 씨앗은 코로나19 시기에 뿌려졌습니다. 대학 입학 직후 비대면 수업과 사회적 거리두기를 경험한 세대는 대학 MT, 환영회처럼 술을 매개로 관계를 형성하는 전통적인 통과 의례를 거치지 못했습니다. 술 없이도 관계를 맺는 방식을 먼저 배운 셈인데, 제 경험상 이 차이는 생각보다 훨씬 큽니다. 19~29세의 월간 음주율은 2017년까지 70.5%였으나 2022년 이후 60%대 초반으로 뚝 떨어졌습니다(출처: 질병관리청).
여기에 헬시 플레저(Healthy Pleasure) 문화가 더해졌습니다. 헬시 플레저란 건강 관리를 의무나 고통이 아닌 즐거움으로 접근하는 태도를 뜻합니다. 운동 루틴을 지키고 식단을 챙기는 일이 SNS에서 자기 표현의 수단이 된 시대에, 술은 그 루틴을 가장 확실하게 무너뜨리는 적이 되었습니다. 저도 술자리가 길어지면 다음 날 아침 운동 루틴이 통째로 날아가고 몸이 무거워지는 게 싫어서, 가급적 홈술로 가볍게 기분만 내거나 칼로리가 낮은 무알코올 맥주를 찾게 됩니다. 이게 비단 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건 수치가 증명합니다.
이 흐름은 젊은 세대에 그치지 않습니다. 올해 1분기 기준 50대 가구의 주류 소비는 10.2%, 60세 이상 가구도 6.9% 줄었습니다. 전국 17개 시도의 월간 폭음률 중앙값도 2년 연속 하락해 33.8%로 집계됐는데, 이는 특정 세대의 취향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가치관이 바뀌었다는 신호입니다.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소버 큐리어스: 의도적으로 음주를 줄이고 음주 습관을 재고하는 라이프스타일
- 헬시 플레저: 건강 관리를 즐거움으로 받아들이는 문화로, 술 소비와 정면으로 충돌
- 코로나19 이후 술 없이 관계를 형성하는 방식을 먼저 배운 세대의 등장
- 월간 폭음률 중앙값 33.8%로 2년 연속 하락 (전 연령대)
990원 소주와 골목상권의 비명, 업계의 대응은 충분한가
그렇다면 주류 업계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을까요.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박리다매(薄利多賣) 전략입니다. 박리다매란 이윤을 적게 남기더라도 많은 수량을 팔아 총수익을 확보하는 판매 방식을 의미합니다. 선양소주의 '착한소주 990', 대전주조와 이마트가 손잡은 '구구탁 막걸리' 모두 990원이라는 가격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참이슬 후레쉬 360㎖가 편의점 기준 평균 1,567원인 걸 감안하면 확실히 싼 가격이긴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전략이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고 봅니다. 소비자들이 술을 줄이는 이유가 가격 때문이 아니라 가치관의 변화이기 때문입니다. "더 싸면 살게"라는 논리가 통하려면 소비자가 가격 때문에 망설이고 있어야 하는데, 지금 소비자들은 그냥 마시고 싶지 않은 겁니다. 오히려 초저가 마케팅은 알코올 의존 위험군이나 가격에 민감한 취약계층의 음주를 부추기는 부작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나마 방향성이 맞아 보이는 것은 무알코올·비알코올 시장 확장과 해외 수출 강화입니다. 무알코올 맥주와 비알코올 맥주는 알코올 함량 기준으로 구분되는데, 무알코올은 알코올이 0%, 비알코올은 1% 미만을 의미합니다. 국내 무·비알코올 맥주 시장 규모는 2021년 415억 원에서 2023년 644억 원으로 성장했고, 2027년에는 1,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소버 큐리어스 트렌드와 정확히 맞닿아 있는 전략입니다.
해외 수출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K-콘텐츠 인기에 힘입어 하이트진로의 미국 소주 수출액은 2020년부터 5년간 연평균 약 28% 성장했습니다. 국내 시장이 구조적으로 줄어드는 상황에서 해외 수요를 끌어오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그런데 정작 제가 마음에 걸리는 건 다른 쪽입니다. 퇴근길 동네 골목을 걷다 보면 단골이던 호프집들이 하나둘 문을 닫고 디저트 카페나 헬스장으로 바뀌는 모습이 눈에 자꾸 밟힙니다. 전국 간이주점·호프 주점 수는 2025년 3월 기준 2만 8,178곳으로 8년 전 대비 46.1%나 줄었습니다(출처: 국세청). '워라밸'이라는 세련된 단어 뒤에는 생계 절벽으로 내몰린 자영업자들의 현실이 있습니다. 정부와 지자체가 이를 트렌드 변화로 방관하는 사이, 업종 전환이나 골목상권 활성화를 위한 실효성 있는 연착륙 대책은 아직도 보이지 않습니다.
"진짜 술 권하는 사회의 종말이 오긴 왔구나"라는 격세지감은 반갑지만, 그 이면에 있는 사람들까지 함께 바라봐야 이 변화가 사회 전체로서 건강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술을 덜 마시는 것 자체는 분명 좋은 방향입니다. 하지만 주류 업계가 990원짜리 소주 하나로 구조적 침체를 돌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산입니다. 소비자의 가치관 변화는 가격 인하로 되돌릴 수 없습니다. 업계는 무알코올 제품 라인업 강화와 해외 시장 개척이라는 진짜 승부수에 더 집중해야 하고, 정부는 골목상권이 연착륙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원책을 내놓아야 합니다. 변화의 방향은 정해졌습니다. 이제 누가 그 변화에 올라탈 것인지가 남은 문제입니다.
참고: https://www.mydailybyte.com/post/%EC%A3%BC%EB%A5%98-%EC%86%8C%EB%B9%84-%EA%B0%90%EC%86%8C-2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