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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년 연장, 모두를 위한 선택인가 (청년 고용, 세대 갈등, 임금체계)

    정년 연장이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고 당연하게 여기고 계셨나요? 저도 그렇게 믿어왔습니다. 그런데 주말마다 교외 목공소에서 통원목 슬래브를 손으로 다듬다가, 문득 그 믿음이 완전히 뒤집히는 순간을 맞았습니다. 한정된 작업대 위에서 무거운 목재가 자리를 차지하면, 새 나무는 올라올 자리조차 없다는 단순한 사실이 고용 시장과 겹쳐 보이기 시작했거든요.

    청년 고용과 정년 연장 사이의 불편한 숫자

    저는 솔직히 이번 기사를 읽기 전까지, 법적 정년을 만 65세로 늘리는 방향 자체에 큰 이견이 없었습니다. 고령화 사회에서 소득 공백, 즉 은퇴 후 연금 수령이 시작되기 전까지 벌이가 완전히 끊기는 구간을 줄여야 한다는 건 상식처럼 느껴졌으니까요. 현행 제도에서는 만 60세에 퇴직하고 나서 국민연금이나 공무원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시점인 63~65세 사이, 최대 5년간 소득이 없는 상태가 이어집니다.

    그런데 한국은행 고용연구팀과 서울대학교가 공동으로 발간한 '초고령 사회와 고령층 계속 근로 방안' 보고서의 한 문장이 머릿속을 완전히 뒤흔들었습니다. 고령층 노동자가 1명 늘어날 때마다 청년층 노동자가 최대 1.5명까지 감소한다는 실증 분석 결과였습니다(출처: 한국은행). 제가 직접 수치를 읽으면서 처음엔 오독인가 싶었는데, 아니었습니다. 대패를 쥐고 있던 손이 그 순간 뚝 멈췄습니다.

    이걸 고용 경제학 용어로 노동 대체 효과(Labor Substitution Effect)라고 합니다. 노동 대체 효과란 고령 노동자가 기존 직위를 유지할 경우 신규 고용 수요 자체가 줄어들어, 청년층이 노동 시장에 진입할 기회가 구조적으로 감소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일자리 총량이 늘지 않는 상황에서 기존 자리의 회전 속도가 느려지면, 신입에게 열리는 문은 그만큼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정년 연장이 청년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이미 역사적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13년 만 60세 정년 의무화가 법제화됐을 때, 전문가들은 그 직후 기업들의 신규 채용 규모가 눈에 띄게 축소됐다고 분석합니다. 지금은 그때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기업들이 AI 도구를 도입하며 정기 공채(공개 채용) 자체를 폐지하고 수시·경력직 채용으로 전환하는 속도가 빨라진 상황입니다. 공채란 정해진 시기에 대규모로 신입 사원을 일괄 선발하는 채용 방식으로, 청년층이 취업 시장에 가장 안정적으로 진입할 수 있는 경로였습니다. 그 경로가 이미 좁아지고 있는데, 정년마저 5년 연장되면 어떻게 될지는 굳이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아도 나옵니다.

    정년 연장의 혜택이 고르게 퍼지지 않는다는 점도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르게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년 연장을 강력히 요구하는 쪽은 대형 노동조합인데, 정작 정년 제도를 운영하는 기업의 비율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고용노동부 조사 기준으로 300인 이상 대기업에서 정년제를 운영하는 비율은 95.1%에 달하지만, 100인 미만 중소기업의 경우 고작 22.5%에 불과합니다(출처: 고용노동부). 결국 이 제도의 수혜가 집중되는 곳은 대기업·공공기관의 고임금 정규직이고, 대다수 서민이 일하는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혜택을 거의 누리지 못하는 구조입니다.

    세대 갈등을 넘어 임금체계 개편이 핵심이다

    정년 연장을 둘러싼 쟁점을 정리하면 크게 세 가지 대안이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습니다.

    • 단계적 연장: 2~3년마다 1년씩 정년을 늘려 10년 이상에 걸쳐 65세까지 도달하는 방식
    • 퇴직 후 재고용: 정년퇴직 이후 1년 단위 계약직으로 다시 고용하는 방식
    • 임금체계 개편: 호봉제를 직무·성과급제로 전환해 고령층 인건비 부담을 기업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조정하는 방식

    여기서 호봉제란 근속 연수에 비례해 자동으로 임금이 올라가는 급여 체계를 말합니다. 오래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임금이 계속 오르는 구조다 보니, 기업 입장에서는 정년이 5년 연장될 경우 그 기간 동안 발생하는 인건비 부담이 상당합니다. 노동계는 임금 삭감 없는 정년 연장을 요구하지만, 기업이 호봉제를 유지하면서 정년까지 연장해야 한다면 신규 채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반면 직무·성과급제란 담당하는 업무의 난이도와 실적에 따라 임금을 결정하는 방식입니다. 이 체계에서는 연령이나 근속 연수가 아니라 실제로 하는 일과 성과가 보상 기준이 됩니다. 정년에 가까울수록 자연스럽게 임금 곡선이 조정되니, 기업의 인건비 부담도 분산되고 청년 채용의 여력도 생깁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임금체계 개편이 단순히 노사 협상 이슈가 아니라, 정년 연장과 청년 고용을 동시에 풀어나갈 수 있는 구조적 열쇠라는 사실을요.

    물론 노동계가 임금체계 개편에 단호히 반대하는 이유도 이해 못 하는 건 아닙니다. 직무·성과급제로의 전환이 실질 소득 삭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는 현실적입니다. 그러나 퇴직 후 재고용 방식도, 단계적 연장 방식도 모두 임금체계를 그대로 둔 채로는 청년 고용 충격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정년연장특별위원회가 이달 말 활동 시한을 앞두고 '단계적 연장'이라는 원칙 외에 아무 결론도 내지 못하고 있는 이유도 이 지점에 있다고 봅니다. 세대 간 이해관계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사안인 만큼, 임금체계 개편을 핵심 의제로 올리지 않으면 논의가 계속 제자리를 맴돌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정년 연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 방향 자체에는 동의합니다. 다만 임금 구조의 개편 없이 법적 의무만 강제하면 그 부담이 고스란히 청년 세대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히 짚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연 연장이 단순한 노후 복지 정책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실제로는 세대 간 자원 배분의 문제이자 노동 시장 전체의 구조 설계 문제입니다. 대패로 목재 표면을 수평 맞추듯, 어느 한쪽에만 힘을 실으면 판 전체가 기울게 됩니다. 지금 필요한 건 큰 소리 높은 쪽의 요구를 그대로 입법화하는 것이 아니라, 호봉제 개편과 재고용 제도를 병행하는 섬세하고 균형 잡힌 고용 설계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논의는 결국 지금 30~40대인 저희 세대와, 지금 막 사회에 발을 내딛으려는 청년 세대 모두의 미래와 직결됩니다. 관심을 끊지 말고 추이를 지켜보시기를 권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노동법·고용 정책 조언이 아닙니다.


    참고: https://dig.mk.co.kr/Digging/Digging.html?id=100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