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시장 경제의 상징인 미국이 민간 기업 지분을 직접 매입한다면, 이걸 과연 자본주의라고 불러야 할까요? 새벽에 페페로미아에 물을 주다 뉴욕 증시를 확인하던 저는, 미국 상무부의 발표를 보고 잠시 스마트폰을 내려놓았습니다. IBM을 포함한 양자컴퓨팅 기업 9곳에 20억 달러(약 3조 원)를 직접 투자하겠다는 소식은, 단순한 산업 육성 정책이 아니라 기술 패권 전쟁의 새로운 국면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국가자본주의로 가는 미국, 왜 양자컴퓨팅인가
이번 미국 정부의 행보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투자 방식입니다. 단순 보조금이 아니라 기업 지분을 직접 취득하는 구조인데, 이는 시장에 자금을 '뿌리는' 것이 아니라 '심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저는 1인 디지털 창업을 준비하면서 가상서버 보안 시스템을 직접 구축한 경험이 있는데, 그 과정에서 공개키 암호체계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사용되는지 뼈저리게 실감했습니다.
공개키 암호체계(PKI, Public Key Infrastructure)란, 두 개의 키를 쌍으로 묶어 데이터를 암호화하고 인증하는 방식입니다. 쉽게 말해 오늘날 인터넷 금융 거래, 전자서명, 군사 통신 등 사실상 모든 디지털 보안의 근간을 이루는 기술입니다. 양자컴퓨터가 본격적으로 상용화되면 이 체계가 단숨에 무력화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입니다. 미국 정부가 안보 차원에서 선제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번 투자는 반도체와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 재원을 활용합니다. 반도체와 과학법이란 2022년 미국이 자국 내 반도체 및 첨단 기술 산업 육성을 위해 제정한 법률로, 총 2,800억 달러 규모의 지원 근거를 담고 있습니다(출처: 미국 상무부). IBM은 이 중 10억 달러를 받아 뉴욕주 올버니에 미국 최초의 양자 반도체 전용 제조 시설을 세울 예정이며, 자체 자금 10억 달러를 추가 투입해 '앤더론'이라는 신규 법인을 설립하기로 했습니다. 글로벌파운드리스는 3억 7,500만 달러, 디웨이브 퀀텀과 리게티 컴퓨팅은 각각 1억 달러 수준의 지원을 받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미국 정부는 앞서 인텔 지분 약 10%를 확보하고 희토류 기업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바 있는데, 이번 양자컴퓨팅 투자는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관련주 과열, 숫자 뒤에 숨은 민낯
발표 이후 뉴욕 증시에서 리게티 컴퓨팅이 하루 만에 19.87% 급등했고, 디웨이브 퀀텀과 아이온큐도 각각 14.22%, 8.07% 올랐습니다. 국내 시장은 더 격렬했습니다. 드림시큐리티가 30% 상한가, 포톤이 2거래일 연속 가격제한폭까지 치솟았고, 한국첨단소재, 케이씨에스, 엑스게이트도 일제히 상한가를 기록했습니다. 제가 직접 확인해보니 'SOL 미국양자컴퓨팅TOP10' ETF의 해당 주간 수익률은 13.48%에 달했습니다.
여기서 제가 주목한 것은 수익률이 아니라 상승의 '근거'입니다. 국내 상한가 종목들의 사업 내용을 하나씩 들여다보면, 양자컴퓨팅 자체 기술을 보유한 곳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기존 보안 솔루션 사업자에 양자내성암호(PQC, Post-Quantum Cryptography)라는 키워드를 결합한 형태입니다. 양자내성암호(PQC)란 양자컴퓨터의 연산 능력으로도 해독이 불가능한 차세대 암호 알고리즘으로,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가 2024년 최초의 PQC 표준을 공식 발표한 바 있습니다(출처: NIST). 이 기술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PQC 관련성만으로 기업 가치가 하루 만에 30% 오를 이유는 없습니다.
저는 변동성이 큰 개별 테마주에 무작정 뛰어드는 대신, 보유 중인 ETF의 비중을 조정하는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는 쪽을 택했습니다. 남들이 상한가 종목을 추격 매수할 때, 제 경험상 그 타이밍이 가장 위험하다는 것을 몇 번의 학습으로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순환매(테마에 따라 투자 자금이 여러 종목을 돌아다니는 현상)에 편승한 종목은 테마가 식는 순간 급락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이번 과열 장세에서 냉정하게 살펴봐야 할 지표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해당 기업이 실제 양자 관련 원천 기술이나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가
- 매출 규모와 영업이익 흑자 전환 시점이 명확하게 제시되고 있는가
- PER(주가수익비율)조차 산출되지 않는 적자 기업인데 주가가 급등하고 있지는 않은가
- ETF를 통한 분산 투자로 단일 종목 리스크를 낮출 수 있는가
옥석 가리기, 기술과 투기 사이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미국 상무부 고위 당국자가 "여러 기업에 투자를 분산해 리스크를 낮췄다"고 밝혔지만, 저는 이 발언이 오히려 불안감을 키웠습니다. 리스크 분산이 필요하다는 말은 곧 개별 기업에 대한 확신이 충분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큐비트(Qubit)의 안정성 문제, 즉 양자 정보의 최소 단위인 큐비트가 외부 환경에 극도로 민감해 오류율이 높다는 근본적인 기술 과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상용화까지 수년에서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다는 전망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디코히런스(Decoherence)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양자 상태가 외부 노이즈에 의해 붕괴되어 연산 오류가 발생하는 현상으로, 현재 양자컴퓨터 상용화의 가장 큰 기술적 걸림돌로 꼽힙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아무리 국가가 수조 원을 쏟아붓더라도 당장 현실적인 수익 모델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시장이 흥분하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냉정한 투자자라면 그 흥분을 관찰하는 쪽이 더 현명합니다.
제 서재에는 미국 테크 트렌드를 다루는 뉴스레터 몇 가지를 꾸준히 구독하고 있는데,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원천 기술과 실질 매출을 가진 기업, 그리고 분산 투자 구조를 갖춘 ETF를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설계하라는 것입니다. 양자컴퓨팅이 기술 패권의 핵심 축이 될 것이라는 방향성은 옳지만, 그 파도를 타는 방법은 남들과 달라야 합니다.
양자컴퓨팅이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는 사실은 저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확신이 지금 당장 상한가를 추격해야 할 이유는 되지 않습니다. 미국 정부의 행보를 기술 패권 전쟁의 장기 신호로 읽고, 실체 있는 기업과 분산된 ETF를 중심으로 전략을 짜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뇌동매매보다 긴 호흡의 포트폴리오 설계가, 결국 이 시장에서 살아남는 방식일 것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은 반드시 본인의 책임 하에 이루어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