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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공보물 논란 (세금낭비, 디지털전환, 옵트인)

by 부자길 2026. 5. 31.

선거공보물 논란 (세금낭비, 디지털전환, 옵트인)

어제 퇴근길에 우편함을 열었다가 묵직한 봉투 하나를 꺼내 들었습니다. 선거공보물이었습니다. 코팅된 아트지들이 쏟아지는 걸 보는 순간, 제 머릿속엔 딱 하나의 생각만 들었습니다. '이걸 이제 어떻게 버리지?'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배달된 종이 선거공보물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습니다. 수천억 원의 세금과 환경 비용, 그리고 대부분이 버려진다는 현실이 맞물리면서입니다.

봉투째 버리는 사람이 절반이 넘는다는 현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올해 2~3월 선거권이 있는 국민 682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종이 공보물을 '대충 훑어본다'는 응답이 52.2%에 달했고, '봉투째 버린다'와 '읽지 않는다'는 응답을 합치면 36.3%나 됐습니다. 자세히 읽어본다는 사람은 10명 중 1명 수준에 불과했습니다(출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저 역시 다르지 않았습니다. 제가 직접 봉투를 뜯어봤는데, 후보자 얼굴이 번쩍이는 두꺼운 아트지들이 잔뜩 쏟아져 나왔습니다. 디지털 부업을 기획하면서 모든 기획서와 문서를 태블릿의 PDF 파일로만 처리하는 저로서는, 스마트폰 화면 몇 번만 터치해도 중앙선관위 홈페이지에서 후보자의 전과 기록부터 재산 내역까지 다 확인할 수 있는 세상에 왜 이런 방식이 반복되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공보물을 뜯지 않는 이유로는 'TV 등으로 이미 알고 있다'는 응답이 55.7%로 가장 많았습니다.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 즉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정보를 스스로 선별하고 소화하는 능력이 높아진 현대 유권자에게, 종이 공보물은 이미 정보 전달 수단으로서의 기능을 사실상 잃어버린 셈입니다.

세금낭비, 숫자로 보면 더 심각하다

발송 비용만 따져도 매 선거마다 320억~370억 원의 세금이 투입됩니다. 제작비를 포함하면 그 규모는 훨씬 더 커집니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는 공보물이 5억 8000만 부나 발행됐는데, 이 수치가 처음 눈에 들어왔을 때 저는 잠시 숫자를 다시 확인했습니다. 5억 8000만 부. 우리나라 인구가 약 5100만 명임을 감안하면, 국민 한 명당 열 장이 넘는 종이가 뿌려진 셈입니다.

여기서 ROI(투자 대비 효과)를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ROI란 투입한 비용 대비 실제로 얼마나 효과를 거뒀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열 명 중 한 명만 제대로 읽는다면, 나머지 아홉 명에게 배달된 공보물의 ROI는 사실상 0에 가깝습니다. 민간 기업이었다면 즉시 중단했을 마케팅 방식을 국가 예산으로 매 선거마다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행정 효율성 측면에서 지적할 부분도 있습니다. 현행 선거공보물 시스템은 유니버설 디스트리뷰션(universal distribution), 즉 수신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가구에 일괄 배포하는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쉽게 말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모든 가정의 우편함에 무조건 꽂아두는 구조입니다. 이 방식이 설계된 시대에는 합리적이었을지 몰라도, 2026년 현재의 미디어 환경과는 명백히 맞지 않습니다.

환경오염, 재활용도 안 되는 코팅 종이의 문제

제가 30대 중반이 되면서 제로 웨이스트(Zero-Waste) 가사 시스템 구축에 꽤나 집착하게 됐습니다. 택배 상자 하나도 바로 분해해 압착하고, 비닐 코팅된 종이는 칼로 일일이 저며내어 분리 배출하는 것이 저의 취미 아닌 취미입니다. 그런데 선거공보물 봉투를 열었을 때 쏟아진 두꺼운 아트지들 앞에서 저는 잠시 손을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거공보물에 쓰이는 아트지는 대부분 UV 코팅 또는 라미네이팅(laminating) 처리가 된 종이입니다. 라미네이팅이란 종이 표면에 얇은 합성수지 필름을 열과 압력으로 접착하는 처리 방식으로, 광택과 내구성을 높이는 대신 종이와 플라스틱이 물리적으로 결합되어 일반 재활용이 불가능해집니다. 결국 대부분이 일반폐기물, 즉 종량제 봉투로 처리될 수밖에 없습니다.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공보물·투표용지·벽보 등 선거 인쇄물에 사용된 종이만 1만 2853톤에 달했습니다. 종이 1톤을 생산하는 데 30년 된 나무 17그루가 필요하다는 점을 대입하면, 그 선거 하나로 30년 된 나무 21만 그루 이상이 사라진 셈입니다(출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제 손으로 직접 가위로 코팅 종이를 잘게 쪼개며 종량제 봉투에 쑤셔 넣던 그 저녁, 이 숫자가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디지털전환과 옵트인, 어떤 방식이 현실적인가

이 지점에서 의견이 갈립니다. 디지털 공보물로 전환해야 한다는 쪽과, 고령층 등 디지털 취약계층의 알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쪽이 팽팽하게 맞섭니다. 저는 두 의견 모두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다만 그 접점을 잘못 찾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 거론되는 현실적인 개선 방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옵트인(Opt-in) 방식 전환: 종이 공보물 수령을 원하는 유권자가 직접 신청하는 방식으로 바꾸고, 미신청자에게는 디지털 공보물을 기본으로 제공한다. 옵트인이란 사전에 동의한 사람에게만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배달 앱에서 일회용품을 원하는 사람만 받도록 바뀐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 디지털 공보 시범 도입: 젊은 층 비율이 높은 도시부터 전자공보(e-공보) 시스템을 시범 운영해 효과를 검증한다. 전자공보란 종이 대신 공식 웹사이트나 앱을 통해 후보자 정보를 제공하는 디지털 형태의 선거공보물입니다.
  • 재질 법제화: 불가피하게 종이 공보물을 발행할 경우, 재활용이 가능한 무코팅 용지 사용을 의무화하도록 관련 법령을 정비한다.
  • 취약계층 접근성 보완: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접근이 어려운 고령층을 위해 주민센터·경로당 등에 공보물 비치 및 열람 서비스를 운영한다.

고령층의 정보 소외를 우려하는 시각도 충분히 타당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 국민에게 읽히지도 않는 코팅 종이를 해마다 수억 부씩 배달해야 하는 이유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디지털 접근성 격차(digital divide), 즉 정보통신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과 환경의 차이를 해소하는 방향은 종이를 무한정 뿌리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후보자 정보를 검색할 수 있도록 공공 디지털 인프라와 UI/UX(사용자 인터페이스/경험)를 개선하는 데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정보를 원하는 사람은 이미 스마트폰이든 TV든 자신만의 방식으로 찾아봅니다. 반면 정보를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아무리 종이를 배달해도, 그 봉투는 결국 뜯기지 않은 채 쓰레기통으로 향할 뿐입니다.

결국 이 문제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로 보입니다. 옵트인 방식 전환은 당장 내일도 설계할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다음 선거부터라도 공보물 수령을 원하는 유권자가 신청하는 구조로 바뀐다면, 수백억 원의 세금과 수십만 그루의 나무를 아낄 수 있습니다. 제 정돈된 일상에 날아든 코팅 종이 폭탄을 가위로 쪼개던 그 저녁, 이 간단한 변화가 왜 이렇게 늦어지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습니다.


참고: https://newneek.co/@newneek/article/40782?utm_source=newsletter&utm_medium=daily&utm_campaign=260527&utm_content=40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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