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작년 연말, 예비신부와 주말마다 임장을 다니던 때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저는 경상권에 살고 있어서 서울 전세난과는 결이 다른 고민을 했지만, 집 한 칸 마련하려는 조바심만큼은 전국 어디든 똑같더군요. 그런데 지금 서울에서 벌어지는 전세수급 불균형 수치를 보니, 그때의 그 막막함이 다시 올라옵니다.
전세수급지수 108.4, 숫자가 말하는 시장의 민낯
4월 셋째 주 기준으로 서울 아파트 전세수급지수가 108.4까지 올라섰습니다. 전세수급지수란 전세 수요와 공급의 비중을 0~200 사이의 수치로 점수화한 지표입니다. 100을 기준으로 숫자가 200에 가까울수록 전세를 구하려는 사람이 내놓으려는 사람보다 훨씬 많다는 뜻이고, 0에 가까울수록 그 반대입니다. 108.4라는 수치 자체도 놀랍지만, 더 눈에 띄는 건 상승 속도입니다. 직전 주 105.2에서 한 주 만에 3.2포인트 뛰었는데, 그 전주 상승 폭(0.7포인트)의 네 배를 넘어선 겁니다. 이는 전세대란이 사회적 이슈로 번졌던 2021년 6월 이후 약 4년 10개월 만의 최고치입니다(출처: 한국부동산원).
권역별로 쪼개보면 불균형이 더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성동·광진·동대문·중랑·성북·강북·도봉·노원을 아우르는 동북권이 111.3으로 가장 높고, 서북권(은평·서대문·마포) 108.6, 서남권 108.2 순이었습니다. 강남·서초·송파·강동을 포함한 동남권과 도심권조차 105.3으로 100을 웃돌았으니, 사실상 서울 전역이 수요 우위 국면에 진입한 셈입니다.
전세 매물 자체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합니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4월 26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1만 5,422건으로, 올해 1월 1일의 2만 3,060건과 비교하면 불과 4개월 만에 33% 가까이 줄었습니다. 매물 세 건 중 한 건이 시장에서 증발한 것입니다.
이 매물 감소의 구조적 원인을 정리하면 크게 세 가지입니다.
-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에 따른 갭투자 차단: 작년 10·15 대책으로 서울 전역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이면서 주택 매입 시 2년 실거주 의무가 부여됐습니다. 갭투자란 전세를 끼고 낮은 자기자본으로 주택을 사는 투자 방식인데, 이 규제로 사실상 막혀버렸습니다.
- 신축 아파트 입주 물량 감소: 신규 전세 공급의 핵심 역할을 하던 신축 입주 물량이 줄면서 시장에 풀리는 매물 자체가 감소했습니다.
- 전세의 월세화 가속: 임차인은 전세대출 이자 부담을 피하려 월세를 택하고, 임대인은 보유세 상쇄를 위해 월세 전환을 선택합니다. 전세사기 사태 이후 비아파트 전세 기피 현상이 겹치면서 아파트 전세 수요 집중까지 이어졌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복합적인 구조가 맞물리면 단기간에 해소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재작년에 지방에서 매물을 보러 다닐 때도 "공급이 줄었다"는 말은 항상 있었는데, 실제로 괜찮은 매물을 잡기까지 수개월이 걸렸거든요. 서울은 그 압력이 훨씬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전셋값 상승과 주거 불안, 결국 30대가 감당한다
매물 부족이 장기화되자 전세가격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일부 자치구에서는 전세 누적 상승률이 매매 상승률을 넘어서는, 통상적으로 보기 드문 역전 현상까지 나타났습니다. 노원구는 올해 전세가격이 3.47% 올라 매매가격 상승률 3.20%를 추월했고, 도봉구(매매 1.55%, 전세 2.43%)와 강북구(매매 1.66%, 전세 2.44%)도 같은 흐름을 보였습니다. 서울에서 전셋값 상승률이 가장 높은 자치구는 성북구로, 올해 누적 상승률이 3.56%에 달했습니다(출처: 한국부동산원).
여기서 전세가율이라는 개념을 잠깐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전세가율이란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의 비율을 뜻하는데, 이 수치가 높아질수록 전세 세입자의 보증금 미반환 위험, 즉 이른바 역전세난 위험이 커집니다. 전셋값 상승이 매매가 상승을 추월하는 현상은 결국 전세가율을 끌어올리고, 시장 불안정성을 키운다는 점에서 단순한 가격 상승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제가 직접 임장을 다녀보면서 느낀 건, 집을 찾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스트레스는 '가격'보다 '예측 불가능성'이라는 겁니다. 얼마면 살 수 있다는 기준이 흔들리면,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지금 서울 전세 시장이 딱 그 상태로 보입니다.
정책적 측면에서도 짚어볼 점이 있습니다.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이나 실거주 의무 같은 갭투자 차단 규제는 분명 투기 수요를 억제하는 순기능이 있습니다. 그러나 전세 매물 33% 급감이라는 수치는 규제의 부작용이 시장 자생력을 꺾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공급 측면의 대책 없이 수요만 억누르는 방식은 결국 임차인에게 고스란히 부담이 돌아갑니다. 지방에서 집을 구하면서도 느꼈지만, 매물이 없는 시장에서 임차인은 협상력이 거의 없습니다.
봄 이사철 수요가 마무리되더라도 가을 이사철까지 매물 부족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신축 입주 물량 부족, 갭투자 차단, 월세 전환 가속화라는 세 가지 구조적 요인이 동시에 작동하는 한, 수급 균형이 빠르게 회복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지방에 사는 입장에서 서울의 전세수급 불균형을 바라보면, 수도권 집중이 결국 지방 인구 유출과 주거 양극화를 더 심화시킨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문제가 서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지금처럼 매물 잡기가 '운칠기삼'이 된 시장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자산 형성 단계에 있는 30대 직장인들입니다. 정부가 투기 억제라는 명분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시장에 매물이 돌 수 있는 유연한 공급 정책을 함께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전세 수요자라면 지금은 매물 확보를 서두르되, 무리한 대출보다는 예산 범위 내에서의 선택지를 넓혀두는 방향이 현실적으로 보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공개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작성한 것이며, 전문적인 부동산 투자나 금융 조언이 아닙니다. 실제 거래나 의사결정은 전문가와 상담하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www.mydailybyte.com/post/%EC%A0%84%EC%84%B8%EB%82%9C-26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