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의 종전 협상이 최종 단계"라고 SNS에 올린 날 아침, 저는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그 뉴스를 보며 잠깐 숨을 놓았습니다. 올해 초 미국-이란 전쟁이 터지고 호르무즈해협이 막히면서 유가가 치솟을 때, 직장 동료들과 커피 한 잔 앞에 두고 "기름값이 오르면 물가가 따라오고, 결국 우리 월급만 제자리"라며 한숨을 쉬었던 기억이 있어서입니다. 그런데 퇴근길에 MOU 초안의 세부 내용을 뜯어보고 나니, 그 안도감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MOU 초안에 담긴 것과 빠진 것
현재 미국과 이란이 조율 중인 양해각서(MOU)는, 쉽게 말해 전쟁을 일시적으로 멈추는 기본 합의서입니다. 정식 평화협정이나 핵 폐기 조약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초안에 담긴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을 재개방하고, 30일 이내에 전쟁 이전 수준의 통행량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 미국은 이란 항구에 대한 봉쇄를 해제한다.
- MOU 유효기간은 60일로 설정하되, 상호 합의 시 연장 가능하다.
- 고농축 우라늄(HEU) 처리 방식, 우라늄 농축 중단 여부, 이란의 탄도미사일 비축 문제는 60일 휴전 기간 동안 별도 협상을 통해 결정한다.
여기서 고농축 우라늄(HEU)이란 핵무기 제조에 직접 사용될 수 있는 수준까지 농축도를 높인 우라늄을 의미합니다. 일반 원자력 발전에 쓰이는 저농축 우라늄과는 달리, 농축도가 90% 이상에 달하면 핵탄두 제조가 가능해집니다. 이번 전쟁의 명분이 바로 이 HEU의 차단이었는데, 정작 MOU 초안에서는 그 처리 방식이 통째로 '나중에 이야기하자'는 식으로 빠져 있습니다. 제가 직접 외신 분석들을 읽으면서 가장 황당했던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었습니다.
호르무즈해협 재개방이 갖는 경제적 의미
호르무즈해협은 전 세계 원유 해상 운송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병목 지점입니다(출처: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여기서 해협 봉쇄가 에너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려면, 원유 공급 충격(Supply Shock)이라는 개념을 알아야 합니다. 공급 충격이란 원자재 생산이나 운송에 갑작스러운 차질이 생겨 시장 가격이 단기간에 급등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올해 초 호르무즈해협이 막혔을 때 국제 유가가 단기간에 급격히 오른 것이 바로 이 공급 충격의 전형적인 사례였습니다.
저는 회사에서 글로벌 원자재 가격과 거시경제 동향을 모니터링하는 업무를 맡고 있는데, 호르무즈가 막힌 기간 동안 유가 관련 지표를 들여다보는 일이 거의 트라우마 수준이었습니다. 해협이 다시 열린다면 단기적으로는 에너지 가격 안정에 분명히 기여할 것입니다. 하지만 협상이 60일 안에 결렬될 경우, 이 공급 충격은 재현될 수 있습니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이 "조만간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언급한 만큼, 시장도 일단 이 신호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저는 그 낙관이 지나치다고 생각합니다.
오바마 JCPOA와 판박이인 구조적 문제
이 대목에서 과거 오바마 행정부의 이란 핵합의인 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가 떠오릅니다. JCPOA란 2015년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중국, 러시아 등 6개국이 이란과 맺은 핵 활동 제한 협약으로, 이란이 핵개발을 중단하는 대신 국제사회가 경제 제재를 완화해주는 구조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에 이 협약을 "역대 최악의 굴욕 협상"이라며 일방적으로 파기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협상 중인 MOU 초안의 구조를 보면, JCPOA와 본질적으로 같은 패턴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먼저 경제적 혜택(봉쇄 해제, 해협 재개방)을 줘서 이란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고, 핵심 쟁점인 핵 폐기 메커니즘은 나중으로 미루는 방식입니다.
공화당 강경파에서 "이럴 거면 전쟁은 왜 했냐"는 반발이 터져 나오는 것은 그래서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더 황당한 것은 이란 측 반응입니다. 이란 정부는 이번 협상 타결 가능성에 "우리가 미국을 이겼다"는 표현까지 썼다고 합니다. 제 경험상, 협상에서 한쪽이 '승리'를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순간 상대방이 그 협상을 오래 유지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란의 발언은 이후 미국 내 반발 여론을 더 키울 가능성이 있습니다.
비핵화 협상의 난항은 역사적으로도 반복돼 왔습니다. 북한 비핵화 협상에서도 초기 합의 이후 검증 메커니즘을 두고 협상이 수년간 지지부진했던 사례가 있으며, 이란의 경우도 비슷한 경로를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습니다(출처: 미국 외교협회(CFR)).
60일 휴전이 진짜 '종전'이 되려면
60일 휴전 기간이 실질적인 종전으로 이어지려면, 이 기간 안에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핵사찰 접근권 보장, 고농축 우라늄의 제3국 이전 또는 폐기 방식 합의, 탄도미사일 비축량 감축 협의가 모두 60일 안에 윤곽을 잡아야 합니다. 한 미국 당국자가 "이란이 핵협상에 진지하지 않다고 판단될 경우 MOU 합의는 60일도 되지 않아 무산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배경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여기서 핵사찰(IAEA 사찰)이란 국제원자력기구가 해당 국가의 핵시설에 직접 접근해 핵물질의 존재와 양을 확인하는 절차를 말합니다. 이란은 과거에도 IAEA의 전면적인 핵사찰을 수용하는 데 매우 소극적이었고, 이것이 JCPOA 파기 이후 갈등이 재점화된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60일 안에 이 문제에서 진전이 없다면, 이번 MOU는 말 그대로 유가를 잠깐 안정시키고 여론을 달래기 위한 임시방편에 그치게 됩니다.
이란의 경제 상황도 변수입니다. 전쟁과 제재의 이중고로 이란 경제가 심각한 압박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이것이 이란 지도부가 협상 테이블에 나온 가장 큰 이유로 분석됩니다. 그러나 이란 지도부가 내부적으로는 "우리가 이겼다"는 서사를 유지하면서 협상에서는 최대한 양보를 끌어내려 할 것이라는 점에서, 60일이라는 시간은 실질적인 합의를 도출하기에 턱없이 짧을 수 있습니다.
아침 뉴스가 안도감을 줬다면, 퇴근길 외신 분석은 그 안도감을 상쇄하고도 남았습니다. 호르무즈해협이 다시 열리고 유가가 안정되는 것은 분명 반길 일입니다. 그러나 핵 폐기라는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60일짜리 타이머를 돌려놓은 이 합의가, 진짜 종전의 시작인지 아니면 또 다른 위기의 예고편인지는 두 달 뒤에야 드러날 것입니다. 지금 당장 유가 흐름보다 60일 협상의 진행 방향을 더 예의주시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참고: https://newneek.co/@newneek/article/40766?utm_source=article&utm_medium=share&utm_content=407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