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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오랫동안 이 싸움의 본질을 잘못 읽고 있었습니다. 중국이 희토류를 흔들어봤자 미국 빅테크의 소프트웨어 우위 앞에서는 결국 고개를 숙일 거라고 믿었거든요. 그런데 주말 아침 목공소에서 대패질을 멈추고 읽은 한 줄의 속보가 그 확신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습니다. 중국이 미국 방산 기업 46개사의 조달을 당일부로 차단했다는 뉴스였습니다.
미중 공급망 전쟁 - 수출통제 명단
지난 22일 중국 상무부는 미국 기업 10곳을 이중용도 품목 수출통제 관리 명단에 올렸습니다. 이중용도 품목(Dual-Use Items)이란 민간과 군사 목적 모두에 쓰일 수 있는 기술이나 소재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쉽게 말해 상업용으로 유통되다가 언제든 무기 체계에 전용될 수 있는 물자를 뜻합니다. 여기에 이름을 올리면 중국 기업은 물론 제3국 기업도 해당 기업에 관련 품목을 납품할 수 없게 됩니다.
같은 날 중국 재정부는 한발 더 나아가 록히드마틴, 레이시온 미사일·방어 사업부, 보잉 방위·우주·안보 부문 등 미국 방산 대기업 46곳의 제품을 중국 정부 조달 시장에서 전면 배제했습니다. 발표와 동시에 즉시 발효된 점이 인상적입니다. 협상 여지를 주지 않겠다는 신호였습니다.
제가 목공소에서 느티나무 슬래브 상판의 썩은 옹이 구멍을 경화제로 메우면서 늘 생각하는 게 있습니다. 아무리 겉면이 반들반들하고 웅장한 원목 테이블이라도, 내부 구조재를 잇는 접착제 공급이 끊기면 결국 전체가 뒤틀린다는 것입니다. 이번 중국의 조치가 딱 그 모습이었습니다. 화려한 첨단 기업의 외관 뒤에서 보이지 않는 중간재 공급을 조이는 방식입니다.
이번 조치는 미국 국방부가 알리바바, 바이두, 텐센트 등 중국 기업 100여 곳을 중국군 지원 기업 명단에 올리려는 움직임에 대한 정면 대응입니다. 엔티티 리스트(Entity List)란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이 관리하는 수출 제한 명단으로, 여기에 포함되면 미국산 기술과 부품 조달이 사실상 봉쇄됩니다. 중국은 미국이 이 카드를 꺼내기 전에 자국도 같은 수단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 셈입니다.
이번 사태에서 확인되는 핵심 구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미국: 중국 기업 100여 곳을 군 지원 기업 명단에 추가, 엔티티 리스트 편입 검토
- 중국: 미국 방산 기업 10곳 수출통제 명단 등재, 46개사 정부 조달 전면 금지 당일 시행
- 영향 범위: 드론·방산 분야의 에이비옥스, 레드캣홀딩스, 틸드론스부터 희토류 업체인 MP머티리얼스, USA 레어어스까지 포함
인듐, AI 패권의 보이지 않는 급소
이번 사태에서 제가 가장 소름 돋았던 대목은 희토류가 아닙니다. '인듐(Indium)'이라는 희소금속이었습니다. 인듐이란 AI 데이터센터에 탑재되는 광학 칩(Photonic Chip) 생산에 필수적인 소재로, 인화인듐(InP) 형태로 고속 광신호 처리에 쓰입니다. 광학 칩이란 전자 신호 대신 빛으로 데이터를 처리하는 반도체로, 차세대 AI 인프라의 전송 속도와 에너지 효율을 결정짓는 핵심 부품입니다.
중국은 전 세계 인듐 공급량의 약 70%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중국 세관 당국은 인듐을 공식 수출통제 대상으로 지정하기도 전에 이미 최종 사용자 정보 제출을 요구하거나 서류 심사 기간을 대폭 늘리는 방식으로 사실상의 비공식 통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테슬라와 스페이스X의 장비 구매 협상이 중국 당국의 개입으로 교착 상태에 빠진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방식이 더 무섭습니다. 공식 제도가 아니기 때문에 기업이 대응 근거를 찾기도 어렵고, 협상 테이블에서 무엇을 요구받는지도 불투명합니다. 목공 작업에 비유하자면, 공개적으로 못을 박는 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무 내부에 미세한 균열을 내는 것과 같습니다.
미·중 비즈니스 협의회(USCBC) 조사에 따르면 협회 소속 기업의 3분의 1 이상이 지난 1년간 중국의 수출통제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응답했으며, 자동차와 물류 분야의 피해가 특히 컸습니다(출처: 미·중 비즈니스 협의회). 이는 이미 공급망 교란이 산업 전반에 현실화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중국의 수출통제가 미치는 영역은 지금 이 순간에도 확장 중입니다. 태양광 패널 핵심 소재인 실리콘 웨이퍼, 전기차 모터에 들어가는 영구자석, AI 인프라의 뼈대가 되는 인듐까지, 원자재 단계가 아닌 중간재 제조 단계로 영향력이 이동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간재(Intermediate Goods)란 최종 제품을 만들기 전 단계의 가공된 부품을 의미하며, 이 단계를 쥐고 있으면 최종 제품 생산 전체를 흔들 수 있습니다.
한국의 대응
솔직히 이 부분이 제가 가장 불편한 대목입니다. 일본은 이미 폐기된 디스플레이 패널에서 인듐을 회수하는 재활용 기술을 갖추고 있고, 미국은 향후 3년간 최대 403톤의 인듐을 전략 비축하겠다는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캐나다, 페루, 볼리비아도 인듐 생산 체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산업통상자원부가 핵심 광물 공급망 다변화를 "시급한 과제"로 언급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출처: 산업통상자원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기업과 국내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인듐 공급이 지연되거나 가격이 급등하면 원가 구조 전체가 흔들립니다. 인듐 확보에 차질이 생기면 광학 칩 생산 일정이 밀리고, 그 여파는 국내 AI 반도체 납기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제가 목공소에서 원목 판재의 내부 결을 깎아낼 때 배운 것이 하나 있습니다. 아무리 겉이 단단해 보여도 내부 섬유 방향을 무시하고 힘을 가하면 어느 순간 통째로 쪼개진다는 겁니다. 지금 한국 공급망이 그 상태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느낍니다.
이 거대한 자원 패권 경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방향은 명확합니다. 조달처 다변화라는 말을 문서에서 꺼내 실제 계약으로 전환하는 것, 폐디스플레이와 폐배터리에서 희소금속을 회수하는 도시 광산(Urban Mining) 인프라를 법제화하는 것, 그리고 국가 전략 비축량을 구체적인 수치 목표와 함께 실행하는 것입니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개인 포트폴리오의 국내 테크 종목에까지 직접 연결되는 시대, 더 이상 원론으로 시간을 벌 수 있는 여유가 없습니다.
한국도 하루 빨리 휘둘리지 않고, 중심을 잡아 굳건히 나만의 길을 갈 수 있는 그런 튼튼한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결정은 반드시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