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말 오전에 1960년대 수동 태엽 시계를 분해하다가 뉴스를 봤습니다. 미국과 이란이 전쟁 발발 106일 만에 전격 종전 합의를 발표하고 호르무즈 해협을 즉각 개방하기로 했다는 속보였습니다. 태엽의 장력을 풀던 손이 그 자리에서 멈췄습니다. 어떤 시스템이든 한계 압력에 도달하면 결국 타협점을 찾는다는 걸, 이날 뉴스가 직접 증명해 보였습니다.
경제압박이 결국 방아쇠를 당겼다
솔직히 저는 이번 합의가 이렇게 빨리 올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아파치 헬기 격추 직후 2·3차 보복 공습을 퍼붓고 추가 폭격을 경고할 때만 해도, 이건 어느 한쪽이 완전히 무릎을 꿇기 전까지는 멈추지 않는 치킨 게임이라고 봤거든요. 그런데 제 예상이 틀렸습니다.
종전을 이끈 진짜 동력은 군사적 열세가 아니라 경제적 임계점이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두 달 넘게 지속되면서 국제유가는 전쟁 전 대비 40~60% 급등했고, 미국 내 휘발유 가격도 약 1.5배까지 치솟았습니다. 여기서 호르무즈 해협이란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잇는 너비 약 33km의 해상 통로로, 전 세계 원유 해상 물동량의 약 20%가 이 해협을 통과하는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의 핵심 병목 구간입니다. 이 병목이 막히자 에너지 비용 상승이 소비자물가 전반으로 번졌고, 트럼프 행정부의 지지율 기어가 삐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란 쪽 상황은 더 가혹했습니다. 이란 법정통화인 리알화 가치가 올해 5월 암시장 기준 달러당 180만 리알까지 폭락했고, 소비자물가상승률은 50% 수준까지 치솟았습니다(출처: 국제통화기금(IMF)). 여기서 법정통화 암시장 환율이란 정부가 공식 고시하는 환율과 달리, 실제 민간 거래에서 형성되는 비공식 환율을 뜻합니다. 암시장 환율이 공식 환율을 크게 벗어날수록 그 국가의 경제적 신뢰도와 구매력이 극도로 훼손된 상태라는 신호입니다. 양측 모두 경제적 한계점에 도달했고, 그 압력이 협상 테이블로 이어진 것입니다.
핵합의의 내용과 그 위험한 타협
이번 종전 양해각서(MOU)의 초안은 총 14개 항으로 구성됐습니다. 양해각서(MOU)란 법적 구속력을 갖는 정식 조약과 달리, 양측이 협의한 기본 원칙과 방향을 문서화한 합의문으로, 향후 정식 협약 체결의 전 단계에 해당합니다. 즉 이번 합의가 최종 확정안이 아니며 동결 자산 해제와 핵 폐기 같은 핵심 쟁점이 여전히 매듭지어지지 않았다는 점은 짚어두어야 합니다.
제가 이번 합의에서 가장 우려스럽게 읽은 대목은 고농축 우라늄(HEU) 처리 방식입니다. HEU란 천연 우라늄보다 우라늄-235 농도를 인위적으로 높인 농축 우라늄으로, 농도 20% 이상부터 무기급 핵물질 제조에 활용될 수 있어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가장 엄격하게 감시하는 물질입니다. 미국은 기존에 이란 HEU의 해외 반출을 요구했지만, 이번 합의에서는 이란 영토 안에서 희석하되 국내 보관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절충했습니다. 이란이 자국 영토 안에 HEU를 보유한 채 핵 역량을 유지하는 구조가 사실상 묵인된 셈입니다.
더 큰 문제는 협상 의제에서 빠진 항목들입니다. 이스라엘이 자국 안보의 핵심으로 보는 이란의 탄도미사일 프로그램과 헤즈볼라 등 친이란 무장세력 문제는 이번 협상 테이블에 아예 오르지 않았습니다. 중동 지역의 불안 요소가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에서 해협만 열린 것입니다.
이번 합의에서 눈에 띄는 항목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이란·레바논 등 전선 즉각 전면 중단 및 추가 군사작전 금지
- 호르무즈 해협 상업용 선박 즉시 전면 개방, 미국 해상봉쇄 해제
- 미국의 대이란 1·2차 제재 해제 검토 및 원유 제재 일정 기간 유예
- 3,000억 달러 규모 재건 기금 조성 및 이란 주변 미군 철수
- HEU 이란 국내 희석·보관 허용 (해외 반출 불요)
- 미사일 프로그램·친이란 무장세력 문제는 협상 의제 제외
시장반응이 말해주는 것과 말하지 않는 것
합의 소식이 전해지자 시장은 즉각 반응했습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와 브렌트유가 각각 5% 넘게 하락하며 배럴당 80달러 초반까지 내려왔고, 코스피 지수는 5.2% 상승한 8,545.98로 마감했습니다. 제가 직접 포트폴리오를 확인하니 몇 달간 꾸준히 녹아내리던 수치들이 한꺼번에 반등하는 걸 보면서, 시계 기어에 윤활유를 들이붓는 것 같은 해방감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다만 이 지표에 지나치게 낙관하는 건 위험합니다. 기업이 원유를 수입해 생산·운송 비용에 반영하고, 그것이 최종 소비재 가격으로 전달되기까지는 통상 수 개월의 시차가 존재합니다. 이를 원가 전가 시차(pass-through lag)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 오늘 유가가 내려도 마트에서 체감하는 물가는 당분간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는 의미입니다. 한국은행 역시 물가 안정이 실물에서 확인되기까지 정책 전환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은행).
호르무즈 해협의 재봉쇄 리스크도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닙니다. 이번 합의 조건 중에는 미국이 약속을 어길 경우 이란이 해협을 다시 봉쇄하고 협상을 중단할 수 있다는 조항이 명시적으로 담겨 있습니다. 미국은 자유로운 항행 보장을, 이란은 자국의 해협 통제권 유지를 원하는 구조적 긴장이 여전히 존재하는 만큼, 유가 하락 수치 하나만 보고 인플레이션이 끝났다고 판단하는 건 이릅니다.
트럼프의 다음 수: 북미 대화의 군불
트럼프 대통령이 중동 종전 합의를 발표한 지 하루 만에 소셜미디어에 김정은 위원장과 판문점 인근을 산책하던 1기 시절 사진을 올렸습니다. 타이밍이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올해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북미 대화를 다음 외교 성과로 포장하려는 정치적 타임라인이 보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신호가 나올 때 한국이 가장 소외되기 쉽습니다. 북미가 직접 거래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안보 이해관계가 논의 테이블 바깥으로 밀려나는 이른바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 리스크입니다. 코리아 패싱이란 한반도 문제를 당사자인 한국이 아닌 미국과 북한이 직접 협상·결정하는 외교적 소외 현상을 뜻합니다. 트럼프 1기 당시에도 싱가포르·하노이 정상회담 국면에서 이 우려가 실제로 제기된 바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북미 대화의 성사 가능성은 불확실합니다. 김정은 정권이 러시아와의 무기 거래를 통해 경제적 숨통을 트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밀착을 강화하고 있어 비핵화 협상에 나설 유인이 과거보다 크게 줄었기 때문입니다. 북·중·러 삼각 구도가 강화된 현 시점에서 트럼프의 사진 한 장이 판을 바꿀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합니다.
이번 미국·이란 종전 합의가 에너지 시장에 단기 안도감을 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가 시계 무브먼트를 분해하며 배운 건, 메인 스프링의 장력이 빠진다고 해서 기어 전체가 정상 작동하는 건 아니라는 점입니다. 핵 문제의 핵심 기어는 여전히 제대로 맞물리지 않았고, 이스라엘·이란 간 미사일 긴장도 그대로입니다. 단기 지표에 흔들리기보다 이번 합의의 유통기한과 리스크를 냉정하게 점검하면서 자산 전략과 외교 대응 방향을 재조정하는 것이 지금 필요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투자·금융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결정 전 반드시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참고: https://www.mydailybyte.com/post/%EB%AF%B8%EA%B5%AD-%EC%9D%B4%EB%9E%80-%EC%A2%85%EC%A0%84-26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