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타가 약 20억 달러, 우리 돈으로 3조 원을 들여 추진했던 마누스 인수가 중국 정부의 금지 결정 한 방에 무산됐습니다. 계약은 체결됐고, 직원들은 이미 짐까지 쌌는데 말입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 소식을 접했을 때 '허탈함'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3조 원짜리 거래가 4개월 만에 뒤집힌 배경
피부과에서 레이저 시술을 받다 보면 장비가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하게 됩니다. 선생님 손기술도 물론 중요하지만, 요즘은 어떤 장비를 쓰느냐가 결과를 좌우합니다. 메타가 마누스를 눈여겨본 이유도 비슷합니다. 마누스는 단순한 AI 챗봇이 아니라 범용 AI 에이전트(Autonomous AI Agent)로 평가받는 기업이었습니다. 여기서 범용 AI 에이전트란 시장 조사, 코딩, 데이터 분석처럼 복잡한 업무를 사람의 개입 없이 스스로 계획하고 실행하는 AI 시스템을 말합니다. 단순 질의응답에 그치는 챗봇과는 차원이 다른 기술입니다.
마누스는 2022년 중국 스타트업 버터플라이이펙트에서 분사한 기업으로, 지난해 3월 AI가 스스로 압축 파일을 풀고 계획서를 작성하는 데모 영상을 공개해 업계를 들썩이게 했습니다. '제2의 딥시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으니까요. 메타는 이 기술을 자사 AI 비서와 기업용 제품에 통합할 계획으로 작년 12월 인수를 공식 발표했습니다.
문제는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 산하 외국인 투자안전심사작업사무실이 올해 1월부터 해당 거래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외국인투자안전심사(FISR, Foreign Investment Security Review)란 자국에 기반을 둔 기업이 외국 자본에 매각될 때 국가 안보나 핵심 기술 유출 여부를 심사하는 제도입니다. 미국의 CFIUS(외국인투자위원회)와 유사한 개념으로, 중국도 2020년 이후 이 제도를 본격적으로 강화해 왔습니다. 결국 약 4개월 간의 심사 끝에 '투자 금지' 결정이 내려졌고, 거래 철회 명령까지 떨어졌습니다.
이미 진행된 변화들이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현재 상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마누스 직원 상당수가 싱가포르 메타 사무실로 이동 완료
- 임원진은 메타 AI 팀에 공식 합류한 상태
- 텐센트홀딩스, 젠펀드, 홍샨 등 기존 투자자들은 이미 투자금 회수 완료
- 중국 측 결정에 따라 이미 처리된 투자도 일정 기간 내 원상복구 필요
저도 회사에서 외부 솔루션 업체와 협업을 준비하다가 법무팀 검토에서 막혀 무산된 적이 있습니다. 그때도 이미 실무 논의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는데, 그 허탈감이 얼마나 컸는지 모릅니다. 마누스 직원들이 느끼는 막막함은 그보다 몇 배는 클 것입니다.
기술 민족주의와 싱가포르 워싱의 충돌
이 거래가 복잡해진 데는 마누스의 '싱가포르 워싱(Singapore Washing)' 이력도 한몫했습니다. 싱가포르 워싱이란 중국계 기업이 미국과 중국 양측의 규제를 동시에 피하기 위해 본사를 싱가포르로 이전하는 전략을 뜻합니다. 마누스는 지난해 7월 본사를 싱가포르로 옮겼는데, 이 과정에서 엔비디아의 최첨단 AI 반도체에 접근하고 중국 정부 규제도 우회하려 한다는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중국 내에서는 대놓고 '배신자'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기술 민족주의(Techno-Nationalism)란 첨단 기술을 국가 주권과 안보의 핵심 자산으로 간주하고, 외국 자본이나 외국 기업의 접근을 정치적으로 통제하는 국가 전략을 말합니다. 제가 직접 이 개념을 공부하면서 느낀 건, 과거에는 "기술은 국경이 없다"는 말이 통했지만 지금은 완전히 다른 시대가 됐다는 점입니다. AI와 반도체를 둘러싼 미중 갈등이 심화되면서, 기술은 이제 가장 노골적인 지정학 무기가 됐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마누스의 창업자 겸 CEO 샤오훙과 최고과학책임자(CSO) 지이차오는 중국 당국으로부터 출국 금지 조치를 받은 상태입니다(출처: Financial Times). 이들은 중국 내 법인과 관련한 외국인직접투자(FDI, Foreign Direct Investment) 규정 위반 가능성에 대해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FDI란 외국 자본이 특정 국가 내 기업에 직접 투자하거나 경영권에 영향을 미치는 투자 형태를 말합니다. 단순한 주식 매입과 달리 경영 참여를 전제로 하는 투자 방식이라는 점에서, 중국이 이 부분을 빌미로 삼은 것으로 풀이됩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중국도 결국 협상 카드로 쓰다가 풀어주겠지' 싶었는데, 창업자에게 출국 금지까지 내린 것을 보면 중국의 의지가 단순한 협상술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미중 기술 패권 전쟁, 앞으로 어떻게 달라지나
이번 결정의 타이밍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이 예정된 시점 직전에 이 결정이 내려졌다는 점에서, 단순한 투자 심사 결과로만 보기 어렵습니다. 5월 정상회담에서는 AI, 무역, 기술 접근권 등이 주요 의제로 오를 전망인데, 중국이 메타-마누스 거래를 차단함으로써 "우리 핵심 기술은 내줄 수 없다"는 신호를 먼저 보낸 것으로 해석됩니다.
미국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백악관은 "어떠한 형태의 부당한 외국 간섭으로부터 미국의 혁신 기술 부문을 보호할 것"이라고 즉각 반응했고, 미 국무부는 전 세계 미국 공관에 딥시크 등 중국 AI 기업을 경계하라는 외교 전문을 발송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출처: Reuters). 제 경험상 이런 식으로 양국이 동시에 날을 세우면, 그 사이에 낀 기업들이 가장 먼저 피해를 입습니다.
비판적으로 봐야 할 지점이 있습니다. AI는 본질적으로 데이터와 인재가 국경 없이 섞일 때 가장 빠르게 성장합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기술의 국적을 따지며 M&A를 막아버리면, 혁신의 속도는 필연적으로 늦어집니다. 그 피해는 결국 더 나은 AI 서비스를 기다리는 전 세계 사용자에게 돌아옵니다. 또한, 싱가포르 워싱 전략을 택하려던 중국계 스타트업들과 벤처 투자자(VC)들에게도 이번 사례는 강력한 경고가 될 것입니다. 앞으로 비슷한 거래에는 중국 당국의 훨씬 까다로운 사전 심사가 뒤따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이번 마누스 사태는 '기술이 국가의 자산인가, 아니면 시장의 자산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꺼내들게 합니다. 당분간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국가가 먼저 쥐고 있을 것 같습니다.
미중 AI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이 시점에, 중국계 기술 기업에 투자하거나 협업을 검토 중이라면 해당 기업의 국적과 법인 구조를 더욱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2의 딥시크'라 불리던 유망 기업이 미중 갈등의 한복판에서 공중에 붕 떠버린 이번 사례는, 기술 투자에서 지정학 리스크를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줍니다. 저도 이번 사건을 보면서, 글로벌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을 한 단계 더 넓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