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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플러스 사태가 터지던 날, 저는 사내 데이터룸에서 유통 시장 점유율 시트를 열어놓고 있었습니다. 2019년 20.2%에서 올해 5월 8.1%로 쪼그라든 대형마트 점유율 수치를 보며 손끝이 멈췄는데, 그날 오후 14년 묶여 있던 새벽배송 빗장이 풀릴 수 있다는 뉴스가 들어왔습니다. 규제 완화가 만병통치약이라 믿었던 저의 생각은, 그 뉴스를 따라가면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14년 만의 규제 완화, 숫자로 보면 보이는 것들
2012년 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은 대형마트에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 금지와 월 2회 의무휴업을 강제했습니다. 여기서 유통산업발전법이란 대형마트·SSM(기업형 슈퍼마켓) 같은 대형 유통업체의 영업 시간과 출점을 제한해 골목상권을 보호하려는 취지로 만들어진 법입니다. 쉽게 말해, 큰 마트가 24시간 장사하면 동네 가게가 다 죽는다는 논리로 탄생한 규제죠.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현실은 달랐습니다. 대형마트가 문을 닫아도 소비자들은 골목 가게로 가지 않았습니다. 출처: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의무휴업일에 전통시장을 찾는다는 소비자는 16.2%에 그쳤고, 대형마트가 문 여는 날 다시 방문하겠다는 응답은 33.5%에 달했습니다. 규제의 수혜자가 골목상권이 아니라 쿠팡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같은 기간 온라인 플랫폼의 점유율은 41.2%에서 58.6%로 훌쩍 뛰었습니다. 저는 이 숫자를 엑셀 시트에서 처음 확인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규제가 오히려 이커머스(e-commerce, 온라인을 통한 상거래)에 10년치 성장 발판을 깔아준 셈이니까요.
이번 논의의 핵심은 새벽배송 허용입니다. 이마트 기준 전국 150여 개 오프라인 점포를 물류 거점으로 쓸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카드입니다. 기존 새벽배송 업체들이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물류센터를 별도로 지은 것과 달리, 대형마트는 이미 전국에 배송 기지가 깔려 있는 셈입니다. 특히 신선식품 콜드체인(cold chain, 신선식품의 품질 유지를 위해 저온 상태를 끊김 없이 유지하는 물류 시스템)을 이미 갖춘 오프라인 매장이 지방 거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한 강점입니다.
그러나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새벽배송은 야간 인건비와 물류비 부담이 주간 대비 1.5~2배 더 드는 구조입니다. 새벽배송의 선두주자 격인 컬리는 2014년 설립 이후 줄곧 적자를 내다 작년에야 처음으로 흑자를 기록했는데, 2021년에는 매출이 전년 대비 64% 늘었음에도 영업적자가 87%나 불어난 역설을 겪었습니다. 대형마트가 후발주자로 이 시장에 뛰어들 경우 수익성 방어선 없이 출혈 경쟁에 내몰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 대형마트 시장 점유율: 2019년 20.2% → 2025년 5월 8.1%로 급락
- 온라인 플랫폼 점유율: 같은 기간 41.2% → 58.6%로 상승
- 새벽배송 운영비: 주간 배송 대비 1.5~2배 수준
- 소비자 찬성률: 성인 2,000명 중 65.1%가 새벽배송 허용에 동의 (한국유통학회)
1,000억 상생기금, 누가 웃고 누가 우는가
규제를 풀어주는 대가로 정부가 꺼낸 카드가 1,000억 원 규모의 상생기금입니다. 대형 유통업체와 온라인 플랫폼이 참여해 골목상권 보호 재원으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인데, 제가 이 구조를 들여다보고 나서 첫 번째로 든 생각은 "이게 과연 누구를 위한 설계인가"였습니다.
유통업계 입장은 명확합니다. 새벽배송으로 매출이 늘어난다는 보장도 없는 상태에서 기금부터 내야 하는 구조입니다. 이커머스 업체 역시 경쟁자인 대형마트의 족쇄를 풀어주기 위해 자기 돈을 내야 한다는 점에서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제가 실무에서 이해관계자 분석을 배우면서 느낀 것은, 돈을 내는 쪽이 아무도 납득하지 못하는 기금은 시작부터 삐걱거린다는 사실입니다.
받는 쪽인 소상공인들의 반응은 더 냉담합니다. 출처: 중소벤처기업부 자료 기준으로 소상공인 총 종사자는 961만 명에 달합니다. 1,000억 원을 단순 나누면 1인당 1만 원 남짓입니다. 소상공인들이 원하는 건 현금 보전이 아니라 디지털 전환 지원과 자생력을 키울 인프라인데, 기금 규모나 설계 방향 모두 그 기대에 한참 못 미칩니다.
여기서 짚어야 할 개념이 상생기금의 구조적 모순입니다. 상생기금이란 대기업이 중소·소상공인과의 격차를 보완하기 위해 조성하는 재원을 뜻하는데, 이번처럼 규제 완화의 '댓가'로 강제 조성되는 방식은 기금 본래의 취지와 다릅니다. 쉽게 말해, 정책 실패를 돈으로 봉합하려는 땜질식 처방에 가깝습니다.
저는 의무휴업 규제 완화가 새벽배송 허용보다 실질적 효과가 더 클 것으로 보입니다. 대형마트가 월 2회 문을 닫는 날 온라인으로 빠져나가는 소비 수요를 오프라인으로 되돌리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업계 안팎에서도 같은 목소리가 나오고 있고, 제가 실무 보고서 데이터를 보면서도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새벽배송은 장기 전략이 될 수 있지만, 당장 마트 실적을 살리는 데는 의무휴업 폐지가 더 직접적인 처방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대형마트 새벽배송이 허용되면 쿠팡이랑 가격 경쟁이 될까요?
A. 가격 경쟁보다는 신선식품과 지방 배송 범위에서 차별화가 먼저 이뤄질 것으로 보입니다. 대형마트는 전국 150여 개 점포를 콜드체인 거점으로 쓸 수 있어 지방 도시에서의 새벽배송이 쿠팡보다 강점을 가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야간 물류비 구조상 가격 경쟁력을 동시에 갖추기는 쉽지 않습니다.
Q. 의무휴업 없애면 전통시장은 진짜 타격 받지 않나요?
A. 대한상공회의소 조사 결과를 보면 의무휴업일에 전통시장을 찾는 소비자는 16.2%에 불과했습니다. 대형마트가 쉬는 날 소비자들은 전통시장이 아니라 온라인 플랫폼으로 이동한다는 뜻입니다. 오히려 의무휴업이 전통시장을 살리는 효과는 통계적으로 미미하고, 이커머스에 소비 수요를 밀어주는 역효과가 더 크다는 시각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Q. 상생기금 1,000억 원이 소상공인한테 실제로 얼마나 돌아가나요?
A. 소상공인 총 종사자가 961만 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1인당 돌아가는 금액은 극히 적습니다. 소상공인들 스스로도 이 금액으로는 실질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필요한 건 현금성 보전이 아니라 디지털 전환 교육이나 온라인 입점 지원 같은 자생력 강화 프로그램이라는 의견이 현장에서 더 많이 나옵니다.
Q. 새벽배송이 마트 실적을 단기간에 살릴 수 있을까요?
A. 단기 실적 개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게 업계 중론입니다. 컬리 사례에서 보듯 새벽배송은 매출이 늘어도 야간 물류비와 인건비 부담으로 영업적자가 동반 확대되는 구조입니다. 대형마트 입장에서는 새벽배송보다 의무휴업 폐지가 비용 부담 없이 즉각적인 매출 회복 효과를 낼 수 있는 현실적인 카드입니다.
결론
14년 만에 열리는 대형마트 새벽배송 논의는 단순한 배송 편의 확대가 아닙니다. 저는 실무 첫해에 이 흐름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규제 완화가 자동으로 시장을 살린다는 단순한 등식이 얼마나 순진한 믿음인지를 배웠습니다.
새벽배송 허용이 오프라인 유통의 반격 카드가 되려면 수익성 방어선이 먼저 설계돼야 하고, 상생기금은 금액이 아니라 소상공인이 실제로 쓸 수 있는 구조로 바뀌어야 합니다. 소비자로서, 그리고 이 시장을 매일 들여다보는 입장에서 한 가지 방향은 분명합니다. 규제 완화의 수혜가 소비자와 소상공인 모두에게 실질적으로 닿는지를 냉정하게 따져보는 눈을 키워야 합니다. 유통 시장의 재편은 이제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