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글이 제미나이 3.5 플래시를 기존 경쟁 모델 대비 절반 이하 가격에 내놓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성능 경쟁이 한창인 줄 알았는데, 구글이 꺼낸 첫 카드가 '가격'이었으니까요. AI 경쟁의 판이 완전히 바뀌고 있다는 걸 직감했습니다.
AI 가성비 경쟁, 왜 지금인가
구글은 이번 구글 I/O 2026에서 제미나이 3.5 플래시를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이전까지 구글은 고성능 모델인 '프로' 버전을 먼저 발표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이번에는 경량 모델을 앞세운 것입니다. 여기서 경량 모델이란, 파라미터 수를 줄여 연산 비용과 응답 속도를 최적화한 AI 모델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엔진 배기량은 줄이되 연비를 극적으로 높인 차량과 비슷한 개념입니다.
성능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코딩 실력을 측정하는 터미널-벤치 2.1에서 76.2%의 정답률을 기록해 앤스로픽의 클로드 오퍼스 4.7(66.1%)을 앞질렀고, 전문직 44개 직종의 실무 능력을 평가하는 GDPval-AA에서도 1,656점으로 준수한 성적을 냈습니다. 경량 모델임을 감안하면 상당한 수치입니다.
이 배경에는 명확한 시장 논리가 있습니다. 최근 오픈AI와 앤스로픽이 컴퓨팅 자원 부족으로 토큰 한도를 축소하거나 요금을 인상한 틈을 구글이 파고든 것입니다. 여기서 토큰(Token)이란 AI 모델이 텍스트를 처리하는 최소 단위로, 영어 기준 단어 하나가 대략 1~2개의 토큰에 해당합니다. 즉 토큰 한도 축소는 AI가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작업량이 줄어든다는 뜻입니다. 순다르 피차이 CEO는 하루 토큰 1조 개를 처리하는 기업이 사용량의 80%를 이 모델로 전환하면 연간 10억 달러(약 1조 5,000억 원)를 절감할 수 있다고 직접 언급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 거부하기 어려운 숫자입니다.
저는 이 전략을 두고 "구글이 드디어 현실을 잡았다"고 보는 분들이 많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동시에 "경량 모델을 앞세우는 건 플래그십 모델의 경쟁력이 아직 부족하다는 방증 아니냐"는 시각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비용 절감이라는 명분이 기업 고객의 의사결정을 얼마나 빠르게 바꿀 수 있는지가 이 전략의 진짜 승부처라고 생각합니다.
에이전트 AI, 편리함의 이면
이번 발표에서 제가 직접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강하게 든 기능은 제미나이 스파크와 유니버설 카트였습니다. 매일 아침 출근해서 수십 통의 메일을 읽고 요약하는 일, 업무 비품을 최저가로 비교해 결재 올리는 일이 얼마나 에너지를 갉아먹는지는 직장인이라면 모두 공감할 겁니다. 화면을 꺼둔 상태에서도 메일과 문서를 종합해 보고서 초안을 만들어두고, 지출 한도 안에서 알아서 결제까지 처리해준다는 개념은 솔직히 설렜습니다.
여기서 에이전트 AI(Agentic AI)란, 단순히 질문에 답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여러 단계의 작업을 순차적으로 실행하는 AI를 뜻합니다. 챗봇이 "어떻게 하면 되나요?"라고 알려준다면, 에이전트 AI는 "제가 직접 해드리겠습니다"의 영역으로 넘어온 것입니다. 구글이 발표한 에이전트 결제 프로토콜은 바로 이 개념의 실전 적용판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 기능들을 보며 설레는 동시에 서늘함을 느꼈던 건 리스크 때문이었습니다. 구글이 공개한 에이전트 결제 프로토콜에서 AI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 문제가 현실화될 경우가 특히 우려됩니다. AI 할루시네이션이란, AI 모델이 존재하지 않거나 잘못된 정보를 사실인 것처럼 생성하는 오류 현상입니다. 사람이 이중으로 확인하는 구조 없이 AI가 직접 돈을 쓴다면, 이 오류 하나가 실제 재정 손실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주변 동료들과 "이제 진짜 AI가 일하고 인간은 결재만 하는 시대가 오는 거냐"며 설레는 대화를 나눴는데, 그 흥분 속에 묻어 있는 불안도 솔직히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 경험상, 편리한 기능일수록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AI가 해킹을 당하거나 잘못된 판단으로 결제를 진행했을 때 법적·재정적 책임이 어디에 귀속되는지, 아직 명확한 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번 에이전트 AI 기능의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제미나이 스파크: 화면 오프 상태에서도 메일·문서를 종합해 보고서 초안 자동 생성
- 유니버설 카트: 웹 및 유튜브 시청 중 발견한 상품을 하나의 장바구니로 통합, 재고·혜택 비교 후 결제
- 에이전트 결제 프로토콜: 사전 설정한 브랜드·지출 한도 내에서 AI가 자율 결제 실행
편리함과 리스크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는 기능들입니다. AI 에이전트의 자율성이 높아질수록 인간의 검증 단계를 어디까지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반드시 뒤따라야 합니다(출처: AI 거버넌스 관련 논의, OECD AI 원칙).
락인 리스크, 구글 생태계에 발을 들이기 전에
구글이 이번 I/O에서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수직 통합이었습니다. 안드로이드 17에 제미나이 인텔리전스를 심고, 크롬OS와 안드로이드를 결합한 구글북 노트북을 출시하며, 삼성전자·젠틀몬스터와 협업한 AI 스마트글라스까지 선보였습니다. 검색, 쇼핑, 유튜브, OS, 노트북, 안경까지 한 줄로 꿰어버린 셈입니다.
여기서 락인(Lock-in)이란, 특정 플랫폼이나 생태계에 의존도가 높아져 다른 서비스로 전환하기 어려워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사용자가 구글 생태계에 깊이 들어올수록 이탈 비용이 커지고, 결국 구글의 가격 정책이나 데이터 활용 방식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됩니다. 특히 AI 스마트글라스는 시선 정보와 생활 패턴까지 수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개인 데이터 종속의 범위가 기존 스마트폰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플랫폼 독점이 심화될수록 소비자 선택권이 제한된다는 우려는 이미 규제 당국에서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EU)은 디지털시장법(DMA, Digital Markets Act)을 통해 구글을 포함한 빅테크 기업들의 자사 서비스 우대와 생태계 폐쇄성을 규제하고 있으며, 실제로 여러 건의 과징금 처분이 이루어진 바 있습니다(출처: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또 한 가지, 안드로이드 17에 포함된 '포즈 포인트' 기능도 제 눈에는 좀 다르게 읽혔습니다. 앱 실행 전 10초 멈춤을 유도하는 디지털 웰빙 기능인데, 한편으로 구글은 유튜브에 AI를 통한 원하는 장면 즉시 이동 기능을 넣고 쇼핑 결제까지 자동화해 사용자를 화면에 더 오래 묶어두는 구조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 두 방향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점을 두고, "디지털 웰빙은 진정성 있는 방향"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는 반면, 저는 솔직히 병 주고 약 주는 식의 마케팅에 가깝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구글이 이번 I/O에서 보여준 전략은 분명 정교하고 설득력이 있습니다. 가성비, 에이전트 실행력, 하드웨어 생태계 통합이라는 세 축은 서로를 강화하며 기업과 소비자를 동시에 공략하는 구조입니다. 그럼에도 이 생태계에 발을 들이기 전에 락인 비용, 데이터 주권, 에이전트 오류에 대한 책임 구조를 한 번쯤 따져보는 것이 현명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편리함의 반대편에 서 있는 질문들을 외면하지 않는 것, 그것이 AI 시대를 현명하게 사는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