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황이 직접 미국 대통령을 겨냥해 "한 줌 폭군들에 의해 세계가 황폐해지고 있다"고 말하는 장면을 상상이나 해봤습니까? 저는 작년 5월 출근길 라디오에서 레오 14세 교황 즉위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이 분이 불과 1년 만에 세계 최강국 대통령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인물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불교 신자인 제가 봐도 그 모습 하나하나가 범상치 않게 느껴졌던 분이었는데, 지금은 전혀 다른 이유로 전 세계의 눈길을 받고 있습니다.
갈등 배경: 두 사람은 원래부터 사이가 나빴다
레오 14세 교황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이의 긴장은 미국-이란 전쟁이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쌓여왔습니다. 저도 처음엔 전쟁이 불씨가 됐을 거라 생각했는데, 들여다보면 이민 정책부터 갈등의 씨앗이 심겨 있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표적인 정책 중 하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강제 추방과 단속으로 대표되는 강경 이민 정책입니다. 레오 14세는 교황이 되기 전부터 이 정책을 "인도적이지 않다"며 공개 비판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교황좌(Holy See)란 교황이 이끄는 가톨릭 교회의 최고 통치 기구이자 독립적인 국제법 주체를 의미하는데, 이 교황좌의 수장이 특정 국가의 내정을 겨냥해 이처럼 직접적인 입장을 표명하는 일은 그 자체로 이례적입니다.
두 사람의 갈등을 증폭시킨 지점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트럼프 행정부의 미등록 이주노동자 강제 추방 정책에 대한 교황의 공개 비판
- 미국의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에 반대하며 "인권과 법치주의를 존중해야 한다"는 교황의 성명 발표
-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을 예수에 빗댄 AI 합성 이미지를 SNS에 게시해 신성모독 논란을 일으킨 사건
-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가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전쟁에 임하겠다"고 발언해 파장을 낳은 일
제가 이 흐름을 하나씩 보면서 느낀 건, 이건 단순히 성격 차이가 아니라 두 사람이 지향하는 가치 자체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이었습니다. 트럼프는 국가 이익과 힘의 논리를 우선시하고, 교황은 보편적 인권과 평화를 앞세웁니다. 이 둘이 충돌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정교분리 원칙과 교황의 역할 사이에서
이번 갈등에서 저는 교황의 행보가 과연 적절한가에 대한 시각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황을 무조건 응원하는 분들도 있는 반면, 저는 이 문제가 생각보다 복잡하다는 쪽에 더 가깝습니다.
정교분리(Separation of Church and State)란 국가 권력과 종교 권력이 서로의 영역에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근대 민주주의 사회의 핵심 기반 중 하나로, 특정 종교가 정치에 영향을 미치거나 반대로 정부가 종교에 간섭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입니다. 교황이 국제 분쟁과 특정 지도자를 겨냥해 반복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이 원칙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가톨릭 내부에서도 "지나친 정치 개입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반면, 교황의 발언을 지지하는 입장에서는 이것이 정치 개입이 아닌 도덕적 권위(Moral Authority)의 행사라고 봅니다. 도덕적 권위란 제도적 권력이 아닌 윤리적 신뢰를 기반으로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힘을 뜻합니다. 성 추문과 부패 문제로 오랫동안 흔들렸던 가톨릭 교회가 이번 교황을 통해 그 도덕적 권위를 되찾을 수 있다는 기대가 신도들 사이에서 나오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반응입니다.
저는 두 시각 모두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교황이 "트럼프 행정부가 두렵지 않고 복음을 계속 전할 것"이라고 밝힌 이후, 그 발언 하나하나의 무게가 이전과는 달리 느껴지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의 정치적 리스크
지금 이 상황에서 더 큰 압박을 받는 쪽은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분석이 많습니다. 단순히 종교 지도자와 싸운다는 이미지 문제가 아니라, 선거 수학(Electoral Math)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선거 수학이란 특정 유권자 집단의 이탈이 선거 결과에 실질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계산하는 정치 전략 용어입니다.
현재 미국 유권자의 약 5분의 1은 가톨릭 신자이며,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에도 보수 성향 가톨릭 유권자 비율이 높습니다(출처: 퓨 리서치 센터). 교황과 날을 세우는 행보가 이 지지층에 균열을 낼 수 있다는 경고가 공화당 내부에서도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두 번째 임기 기준으로 최저 수준에 근접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나폴레옹 1세 이후로 교황과 이렇게 정면으로 맞선 지도자는 트럼프가 처음"이라는 평가를 내놓았습니다(출처: 월스트리트저널). 나폴레옹이 교황을 정치적으로 압박하다가 결국 종교적 정당성을 잃고 민심을 잃어갔던 역사를 생각하면, 이 비교가 단순한 수사는 아닐 수 있습니다.
저는 트럼프가 기업인 출신 정치인으로서 상대를 압박하고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방식이 꽤 일관됩니다. 협상, 관세, 군사적 위협까지 써온 레퍼토리가 있는데, 교황에게는 그런 수단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게 이 갈등의 핵심처럼 보입니다. 관세를 물릴 수도 없고, 방위비를 요구할 수도 없는 상대 앞에서 그의 방식이 얼마나 유효할지, 저는 솔직히 회의적입니다.
이 갈등이 우리에게 남기는 질문
작년 5월 처음 레오 14세 교황의 즉위 소식을 들으며 검색을 해봤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그 뒤를 따르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걸음 하나에 군중이 움직이고, 말 한마디가 국경을 넘어 퍼지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괜히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거창한 권위가 아니라 사람을 움직이는 건 결국 행동과 신뢰라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점에서 이번 갈등은 단순히 종교와 정치의 충돌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권위가 사람들에게 더 오래 남는지에 대한 물음이기도 합니다. 초국가적 권위(Supranational Authority)란 국가의 경계를 초월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권위를 뜻하는데, 교황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군사력이나 경제력이 아닌 신뢰와 가치로 쌓인 권위가 지금 이 갈등에서 어떤 무게를 갖는지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배울 점이 있습니다.
결국 이 싸움이 누구에게 더 유리하게 끝날지보다, 전쟁 속 실제 피해를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결과로 이어지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빨리 불필요한 신경전이 아닌, 실질적인 평화를 향한 대화가 시작되기를 바랍니다. 이 흐름을 더 따라가고 싶으신 분들은 교황의 공식 SNS 계정(@pontifex)과 관련 국제 뉴스를 함께 살펴보시면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