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주식에 투자하다 갑자기 핵심 사업부가 떨어져 나가는 걸 지켜본 적 있으십니까? 저는 있습니다. 그것도 꽤 아프게. 그 경험 이후로 '중복상장'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명치가 살짝 내려앉는 느낌이 드는데, 마침 금융위원회가 이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리는 규제안을 발표했습니다. 과연 이번엔 진짜 달라질 수 있을지, 제 경험을 바탕으로 짚어보겠습니다.
물적분할 피해, 직접 겪어보니 이런 느낌입니다
몇 년 전 일입니다. 저는 어떤 기업의 주식을 상당히 오래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그 기업은 당시 잘나가는 산업의 대장주였고, 실적도 꾸준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뉴스 알림이 하나 뜨더니 종목 토론방이 순식간에 난리가 났습니다. 핵심 사업부를 떼어내 별도로 상장한다는 공시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물적 분할(物的 分割)입니다. 여기서 물적 분할이란 기업이 특정 사업부를 독립법인으로 분리해 자회사를 만드는 방식으로, 기존 주주에게는 새 회사 주식을 한 주도 주지 않고 모회사가 지분 대부분을 그대로 가져갑니다. 저처럼 모회사 주식을 들고 있던 주주 입장에서는 회사의 핵심 가치가 빠져나가는 것을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상장 당일, 제가 보유한 모회사 주가는 힘없이 밀렸습니다. 점심시간에 동료들과 커피를 마시며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주주를 배려 안 하냐"며 울분을 토했던 기억이 지금도 선합니다. 정작 돈은 새로 상장한 자회사가 다 쓸어가는 구조였으니까요. 그때부터 저는 국장(국내 주식시장)에 정이 많이 식었고, 한동안 해외 주식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됐습니다.
LG화학과 LG에너지솔루션이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언급됩니다. LG화학은 배터리 사업이 빠르게 성장하자 2022년 이를 분리해 LG에너지솔루션으로 별도 상장했고, 당시 LG화학 주주들은 주가 급락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제가 몸소 겪은 일과 구조가 똑같았습니다.
더블카운팅이 뭐길래 외국인이 한국 시장을 외면하는가
중복상장의 문제는 주주 피해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시장 전체의 신뢰도를 갉아먹는 구조적 함정이 있는데, 바로 더블 카운팅(Double Counting) 문제입니다. 더블 카운팅이란 모회사 실적에 자회사의 이익이 중복 반영되어 기업 가치가 실제보다 부풀려 보이는 회계 현상입니다. 쉽게 말해 하나의 이익이 두 번 계산되는 구조입니다.
예를 들어 모회사가 자회사 지분을 50% 보유하고, 자회사가 100억 원의 순이익을 냈다면 모회사는 그중 50억 원을 자신의 이익으로 반영합니다. 두 회사의 실제 이익 합산은 200억 원이지만, 주식시장에는 250억 원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이 왜곡이 시장 전체에 쌓이면 외국인 투자자들 눈에는 "한국 시장, 숫자가 믿기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게 됩니다.
실제로 한국의 중복상장 비율은 18.43%에 달해 미국(0.35%), 일본(4.38%), 대만(3.18%) 등 주요국과 비교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출처: 금융위원회). 이 수치만 봐도 왜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증시를 낮게 평가하는지 이해가 됩니다.
이것이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됩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란 한국 기업들의 주식 가치가 실제 실적이나 자산에 비해 다른 나라 증시보다 낮게 평가되는 현상으로, 지정학적 리스크와 낮은 주주 환원율, 대주주 중심의 경영 문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여기에 중복상장으로 인한 이익 계상(利益 計上), 즉 실제보다 이익이 부풀려지는 회계 구조까지 더해지니 신뢰가 쌓이기 어려운 구조였던 셈입니다.
개인적으로 해외 주식을 경험해보니 이 차이가 더욱 또렷하게 보였습니다. 해외 시장에서는 기업이 주주에게 이익을 돌려주는 방식이 훨씬 직관적이었거든요. 국내에 돌아와서도 오랫동안 "우리 시장은 왜 이게 안 될까"를 되뇌었습니다.
이번 규제, 진짜 달라지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금융위원회는 중복상장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일부 예외만 허용하는 방향으로 심사 기준을 강화했습니다. 이르면 2025년 7월부터 시행 예정이며, 예외를 인정받으려면 상당히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출처: 금융위원회).
예외 허용 조건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신규 상장하는 자회사의 경영과 영업이 처음부터 모회사와 독립적이어야 합니다.
- 모회사와 사업모델이 유사하거나 사업 연계성이 높으면 인위적 쪼개기로 간주합니다.
- 기존 주주 보호 방안을 반드시 제시해야 하며, 일반 주주 동의 없이는 상장이 불가합니다.
CJ올리브영, HD현대로보틱스, 한화에너지, SK에코플랜트 등 상장을 준비 중이던 대기업 계열사들이 모두 이 기준을 충족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모회사와의 사업 연계성이 높아 '독립 경영' 요건을 입증하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늦었지만 환영할 만한 조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조금 걱정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원칙적 금지, 일부 예외 허용'이라는 구조 자체가 기업들에게 규제 우회의 여지를 남기기 때문입니다. 경영 독립성이나 주주 보호 방안을 서류상으로만 그럴듯하게 포장해 심사를 통과하려는 시도가 나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기업공개(IPO) 심사 기준을 높이는 것과 함께, 주주가 실질적으로 피해를 입었을 때 보상받을 수 있는 법적 장치까지 함께 정비되어야 진정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이번 규제가 국내 주식시장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는 7월 이후를 지켜봐야 알 수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제처럼 물적 분할 피해를 직접 겪고 국장에 등을 돌린 투자자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여부는 결국 제도가 얼마나 실질적으로 작동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규제가 바뀌는 것보다 신뢰가 쌓이는 데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린다는 점을 정부도 기업도 기억했으면 합니다. 투자 결정을 내리기 전에 금융위원회의 공식 발표를 직접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결정은 반드시 본인의 판단과 책임 하에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