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인 12조 원의 상속세가 완납됐습니다. 삼성 일가가 5년에 걸쳐 6차례 분납한 끝에 낸 결론인데, 이 소식을 접하고 솔직히 처음 든 생각은 "12조 원이 실감이 나나?" 였습니다. 저도 작년 결혼 준비를 하면서 부모님께 받은 몇천만 원을 두고 증여세 신고 여부로 머리를 싸맸는데, 그 단위의 차이가 너무 커서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12조 원, 어떻게 냈나: 납부 방식의 명암
일반적으로 상속세는 한 번에 내는 것이라고 알고 있는 분들도 많은데, 실제로는 연부연납(年賦延納) 제도가 존재합니다. 연부연납이란 고액의 세금을 한꺼번에 납부하기 어려울 때 최대 5년에 걸쳐 나눠 낼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로, 삼성 일가도 이 방식을 활용해 2021년부터 2026년까지 6회에 걸쳐 분납을 완료했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은 같은 유족임에도 납부 방식이 극명하게 갈렸다는 사실입니다. 홍라희 명예관장, 이부진 사장, 이서현 사장은 삼성전자, 삼성SDS, 삼성생명, 삼성물산 등 계열사 지분을 순차적으로 매각해 현금을 조달했습니다. 반면 이재용 회장은 핵심 계열사 지분을 한 주도 팔지 않았습니다. 주식 배당금과 개인 신용대출을 활용해 버텼고, 그 결과 상속 전 0.70%였던 삼성전자 보통주 지분을 현재 1.67%까지 끌어올렸습니다.
저는 이 대목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치 제가 집을 살 때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로 대출을 당겨서 월급날마다 이자 납부 알림을 확인하던 그 감각이랄까요. 기업 오너에게 지배구조, 즉 핵심 계열사의 지분 구조는 그냥 자산이 아니라 경영권 그 자체입니다. 지분을 팔면 의결권이 줄고, 그룹 전체에 대한 통제력이 흔들립니다. 이재용 회장이 단기 유동성보다 장기 지배력을 택한 셈입니다.
삼성 일가의 납부 방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홍라희·이부진·이서현: 계열사 지분 매각을 통한 현금 조달
- 이재용: 주식 배당금 + 개인 신용대출 활용, 지분 매각 없이 지배구조 유지
- 사회 환원 병행: 이건희 컬렉션 2만 3,000여 점 기증(국보 40점·보물 127점 포함), 국립중앙의료원 및 서울대병원에 총 1조 원 지원
사회 환원 측면에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실천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 그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와 책임을 진다는 개념으로, 삼성 일가가 10조 원에 가까운 가치로 평가된 미술품을 팔지 않고 공공에 기증했다는 점에서 단순 세금 납부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규모의 사회 환원은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결단이라고 봅니다.
상속세율 60%의 민낯: 제도 개편 논의는 어디까지 왔나
이번 완납 소식이 다시 불을 지핀 건 상속세율 문제입니다. 우리나라 현행 상속세 최고 세율은 50%인데, 최대주주 할증 과세(최대주주 지분 할증률 20% 적용)까지 더하면 실질 최고 세율이 60%에 달합니다. 최대주주 할증 과세란 경영권을 가진 최대주주의 주식을 상속받을 때 일반 상속보다 20%를 추가로 과세하는 제도로, 경영권 프리미엄이 붙어있다는 논리에서 비롯됩니다.
일반적으로 상속세는 부의 세습을 막는 공정한 장치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 문제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2024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상속세 징수액이 8조 2,000억 원이었는데(출처: 국세청), 삼성 일가 한 가족이 낸 12조 원이 그보다 1.5배 많다는 사실은 우리 상속세 구조의 쏠림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OECD 주요국과 비교해도 우리나라 상속세율은 단연 높은 수준입니다. OECD 평균 최고 상속세율은 약 26% 수준이며, 스웨덴·캐나다·호주 등은 아예 상속세를 폐지하거나 자본이득세(Capital Gains Tax)로 대체했습니다. 자본이득세란 자산을 물려받는 시점이 아니라 나중에 팔 때 발생하는 이익에만 과세하는 방식으로, 경영권을 유지하면서 세금을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출처: OECD).
지난해 정부 차원에서 상속세 계산 방식, 특히 유산취득세(개인이 실제로 취득한 금액 기준으로 과세하는 방식) 전환 논의가 이뤄졌지만,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진전이 없는 상황입니다. 유산취득세란 전체 유산에 세율을 적용하는 현행 유산세 방식과 달리, 상속인 각자가 실제로 받은 금액에만 세율을 적용하는 제도입니다. 이렇게 되면 세율 구간이 낮아져 실질 세 부담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부자 감세"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이 논쟁이 단순히 부자를 더 걷느냐 덜 걷느냐의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상속세 부담이 과도하면 기업 오너는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지분을 쪼개거나, 결국 해외 기업에 매각하는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건 세수 증가보다 더 큰 국가 경쟁력 손실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번 삼성 사례처럼 극한의 연부연납과 신용대출로 버텨낸 케이스가 오히려 드문 경우일 수 있다는 겁니다.
5년간의 긴 납부 여정이 끝난 지금, 삼성 입장에서는 분명 큰 짐 하나를 내려놓은 셈입니다. 이제 이재용 회장을 중심으로 AI 반도체, HBM(고대역폭 메모리) 등 미래 먹거리에 집중할 여건이 만들어졌다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HBM이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아 데이터 처리 속도를 극적으로 높인 고성능 메모리로, AI 서버 시장의 핵심 부품입니다. 삼성이 이 분야에서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을지가 앞으로 더 주목할 지점입니다.
상속세 납부 완료가 제도 개편 논의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릴 계기가 될지, 아니면 "어차피 삼성은 냈잖아"로 흐지부지될지는 두고 봐야 합니다. 다만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60% 실효 세율이 우리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에 걸림돌이 되는지, 아니면 자산 집중을 막는 필요한 장치인지에 대한 토론만큼은 이번이 마지막 기회가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세무 또는 법률 조언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상속·증여세 문제는 반드시 세무사나 변호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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