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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와치 오데마 피게 협업 (오픈런, FOMO, 헤리티지 희석)

by 부자길 2026. 5. 22.

스와치 오데마 피게 협업 (오픈런, FOMO, 헤리티지 희석)

지난 5월, 회사 단톡방이 갑자기 뜨거워졌습니다. 시계를 좋아하는 동료 하나가 "오데마 피게가 스와치랑 손잡았대, 60만 원이래"라고 올린 게 시작이었습니다. 저도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습니다. 시계 마니아들 사이에서 '하늘 위의 별' 취급받는 그 브랜드가 60만 원짜리로 나온다고요? 그런데 그게 현실이었고, 전 세계 30개 매장 앞이 동시에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60만 원짜리 '하늘의 별'이 생긴 날

오데마 피게(Audemars Piguet)는 1875년 스위스에서 설립된 하이엔드 워치메이킹 브랜드입니다. 여기서 하이엔드 워치메이킹이란 단순히 비싼 시계가 아니라, 수십 년 숙련된 장인이 무브먼트 하나하나를 손으로 조립하고 피니싱하는 최상위 시계 제조 방식을 의미합니다. 입문 모델이 2,700만 원에서 시작하고, 돈이 있다고 바로 살 수도 없습니다. 매장 웨이팅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몇 년을 기다려야 겨우 손에 넣을 수 있는 브랜드입니다.

그런 오데마 피게의 시그니처인 팔각형 베젤과 타피세리 다이얼 디자인을 그대로 가져와, 스와치가 약 60만 원짜리 바이오세라믹 소재 시계로 만들어낸 것이 이번 '바이오세라믹 로열 팝' 컬렉션입니다. 바이오세라믹이란 세라믹 소재와 바이오 기반 수지를 혼합한 스와치의 독자 소재로, 일반 플라스틱보다 내구성이 높고 피부 접촉감이 좋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저도 크림(KREAM) 앱을 열어봤습니다. 정가 60만 원짜리가 350만 원에 올라와 있더군요. 동료 중 한 명은 "반차 써서 여의도 IFC몰 가야 하나" 진지하게 물어봤고, 저는 그 말이 농담인지 진심인지 순간 헷갈렸습니다.

한정판이 아닌데도 줄을 선 이유: FOMO와 리셀 심리

스와치는 출시 전부터 공식적으로 선언했습니다. "로열 팝 컬렉션은 한정판이 아니며, 앞으로 몇 달간 계속 판매할 예정입니다."라고요. 그런데도 6일 전부터 노숙하며 줄을 선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걸 이해하려면 2022년 문스와치 사태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당시 스와치는 명품 시계 브랜드 오메가와 협업해 '문스와치'를 선보이면서 똑같이 "한정판 아니에요"라고 했지만, 출시 후 9개월이 지나도록 매장 앞에 줄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판매처를 70곳이나 추가하고도 "일일 수요가 공급을 훨씬 초과한다"고 스와치 그룹이 직접 시인했을 정도였습니다. 소비자들은 몸으로 배운 겁니다. 스와치 협업 제품은 말과 달리 초반엔 무조건 구하기 어렵다는 것을요.

이번 로열 팝 사태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는 FOMO입니다. FOMO(Fear Of Missing Out)란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영원히 뒤처질 것 같은 불안감을 뜻하는 소비 심리 용어로, 한정판 마케팅과 결합했을 때 폭발적인 구매 충동을 만들어냅니다. 실제로 뉴욕에서 5일간 줄을 서서 400달러에 산 사람이 당일 4,000달러에 되팔았다는 사례가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10배 차익입니다.

저도 예전에 마음에 드는 스니커즈 발매일 전날 밤 앱을 켜고 새벽 내내 대기한 적이 있습니다. 직접 겪어보니, 그 상황에서는 "이게 맞나?"를 따지는 이성보다 "지금 아니면 못 산다"는 감각이 훨씬 더 강하게 작동합니다. 합리적 판단이 끼어들 틈이 없는 겁니다.

이번 오픈런에서 소비자들을 줄 세운 심리 구조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리셀 차익: 400달러에 사서 4,000달러에 파는 단기 수익 실현
  • FOMO: 초반에 못 사면 나중엔 더 비싸게 사야 한다는 불안
  • 소속감: "오데마 피게를 60만 원에 샀다"는 상징적 성취감
  • 학습된 경험: 스와치 협업은 한정판 아니어도 초반엔 구하기 어렵다는 인식

오픈런이 만든 뉴스, 뉴스가 만든 브랜드 가치

프랑스 파리 쇼핑몰 앞에 300명이 몰려 경찰이 최루탄을 발사했습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는 대기자들끼리 몸싸움이 벌어졌고, 네덜란드에서는 수백 명이 한꺼번에 몰리자 아예 문을 열지 못했습니다.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는 군중 통제 과정에서 체포자가 나왔고, 롱아일랜드의 한 쇼핑몰에서는 페퍼 스프레이까지 사용되었습니다.

이 혼란 자체가 마케팅이 됩니다. 솔직히 이건 제가 처음 접했을 때도 예상 밖이었습니다. 경찰이 출동한 뉴스가 나오면 "도대체 뭔데 이 난리야?"라며 더 많은 사람들이 브랜드를 검색하게 됩니다. 스와치가 온라인 판매를 열지 않고, 사전 래플(raffle, 추첨 방식의 한정판 판매 시스템)도 도입하지 않은 채 현장 선착순 판매를 고수한 것은 이 혼란을 계산에 넣은 전략으로 보입니다.

그 결과는 숫자로 나타났습니다. 문스와치 출시 전인 2021년, 스와치 브랜드의 연매출은 업계 추산 약 2억 1,400만 스위스 프랑이었습니다. 그런데 2022년 출시 이후 이듬해인 2023년에는 6억 6,000만 스위스 프랑으로 세 배 넘게 뛰었습니다. 업계가 추산한 문스와치의 매출총이익률은 약 80%로, 100원어치 팔면 원가를 제하고 80원이 남는 구조입니다. 이 콜라보 공식이 얼마나 수익성이 높은지 짐작할 수 있는 수치입니다.

로열 팝 발표 직후 캐나다 투자은행 RBC는 스와치 그룹의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를 19% 상향 조정했습니다. 중국 럭셔리 소비 둔화로 2024년 영업이익이 74% 폭락한 스와치 그룹 입장에서, 이 협업 시리즈가 그룹 전체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오픈런의 씁쓸한 이면: 헤리티지 희석과 안전 불감증

그런데 저는 이 공식에 마냥 박수를 보내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오픈런의 열기 뒤에는 불편한 진실이 몇 가지 숨어 있습니다.

첫 번째는 헤리티지(Heritage) 희석의 문제입니다. 헤리티지란 브랜드가 수십 년간 쌓아온 전통, 장인정신, 희소성의 총합을 뜻하는 개념으로, 럭셔리 브랜드의 가치를 떠받치는 핵심 자산입니다. 오데마 피게의 팔각형 베젤 디자인이 60만 원짜리 바이오세라믹 케이스에 담겨 길거리에 퍼지는 순간, 수억 원을 들여 타임피스를 수집해온 하이엔드 소비층은 브랜드에 환멸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맥킨지와 비즈니스 오브 패션이 공동 발표한 '스테이트 오브 럭셔리 2025' 보고서는 지난 5년간 럭셔리 산업의 과도한 팽창이 희소성·창의성·장인정신이라는 핵심 가치를 약화시켰다고 진단했습니다(출처: Business of Fashion). 실제로 글로벌 명품 시장은 2024년 1% 역성장해 3,640억 유로에 머물렀습니다.

두 번째는 기업의 안전 불감증입니다. 스와치는 2022년 문스와치 때 이미 매장 앞 혼란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도 이번에 온라인 드롭이나 래플 방식을 도입하지 않았습니다. 경찰이 최루탄과 페퍼 스프레이를 쏴야 할 정도의 군중이 모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노섬브리아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럭셔리 브랜드가 대중 브랜드와 협업할 경우 소비자가 해당 럭셔리 브랜드에 오히려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출처: Northumbria University). 화제성을 위해 소비자의 안전을 담보로 잡는 이 마케팅 공식은, 언젠가 더 큰 사고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새벽에 앱 앞에서 대기하는 것과, 최루탄이 날아드는 매장 앞에 수백 명이 뒤엉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오픈런이 하나의 놀이 문화가 된 건 이해하지만, 그 문화를 설계한 기업이 안전 설계를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오픈런과 리셀은 이제 단순한 쇼핑이 아닙니다. 재테크이자 놀이 문화이고, 어떤 이에게는 닿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브랜드에 처음으로 발을 들이는 경험이기도 합니다. 스와치 그룹 산하에는 아직 이 공식을 적용하지 않은 하이엔드 브랜드들이 여러 곳 남아 있습니다. 다음 협업이 어느 브랜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화제성과 수익만큼이나 소비자 안전과 브랜드 장기 가치를 함께 고려하지 않는다면, 이 공식은 언젠가 스스로를 갉아먹게 될 것입니다. "한정판 아니에요"라는 공지를 읽으면서도 줄을 서는 사람들의 열망만큼은, 그 어떤 마케팅보다 진짜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지만요.


참고: https://dig.mk.co.kr/Digging/Digging.html?id=9824&sort=d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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